내가 사는 곳에서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원래 축구를 좋아해서 이 지역으로 이사 온 8년 전부터 국가대표 경기는 무조건 직관으로 관람했다. 단돈 6만 원이면 그럴싸한 자리에서 선수들 얼굴을 보며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다 같이 모여서 하나 되어 응원하는 점에 매료되어 축구 직관을 늘 기다려왔다. 이번에도 가고 싶었으나 잠시 망설여졌다. 최근 날씨도 급 쌀쌀해졌고, 또 여전히 등에 통증이 있어 가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축구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은 이 지역에 10년 넘게 살고 있으면서 한 번도 간 적 없다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뭐라고? 이런 문화시민의 특권을 누려본 적 없다고? 바로 축구경기 예매를 시도했고, 몇 시간 만에 간신히 2등석 취소표를 잡아 축구장으로 향했다.
축구장은 추운 편이니 패딩을 입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주차가 너무 어려웠어서 다소 남편이 실망했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축구장 근처 맛있는 집을 찾아 미리 웨이팅을 서있었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경기장으로 향하자 낮부터 진행되어 있었던 푸드트럭과 기념전시, 기념사진 촬영 어트랙션등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모두 빨간 옷을 맞춰 입고 신나고 재밌게 경기 전부터 즐기고 있었다. 포장마차의 감성을 좋아하는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떡볶이, 우동, 닭꼬치 등과 술을 보며, 본인이 조금만 더 일찍 이런 걸 알았더라면 친구들이랑 즐겼을 텐데 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경기 30분 전 입장하여 선수들이 몸 푸는 광경부터 보기 시작했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방문한 축구장은 해설이 없어 초반엔 다소 어색했으나, 금방 응원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축구장이 시야가 굉장히 트여있어서 공도 선수들 얼굴도 오히려 TV 중계보다 잘 보이자, 남편도 금방 신나 하기 시작했다. 이날 경기는 무려 6골이나 넣었고, 그러다 보니 골이 들어갈 때마다 모두 일어서서 환호하고, 귀에 익숙한 여러 응원송이 울려 퍼지고, 또 파도타기를 시작하자 신나서 참여하며 환호하고 사진 찍는 남편을 보며 굉장히 뿌듯했다. 남편의 친구들에게도 이미 문자와 사진으로 자랑을 하고 있었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더 신나 진 것 같았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못해서 아쉬웠지만 직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지방의 매우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이런 도시 아이들의 스포츠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러웠다. 영화관 한번 가려고 해도 주변 큰 도시까지 가야만 했던 나는 절대 누려볼 수 없는 여유이자 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이 도시에 이사 왔을 때도 내가 가장 놀라웠던 점은 ‘내 walking distance에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고, 백화점이 있고, 축구 경기장이 있어!’ 였다. 인프라가 좋은 지역 주민만의 혜택이자 도시 사람들의 베네핏을 나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경기마다 축구장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내가 남편에게 알려주었다는 점도 좋았다. ‘불안정한 나’이기에 고요하고 정적인 남편의 삶을 내가 휘저어 혼란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불안정한 나’이기에 고요하고 정적인 남편의 삶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 나아가 차차에게도 차차의 세계를 확장해 주고, 경험을 넓혀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차차와 셋이서 빨간색 옷을 맞춰 입고 축구장을 찾아 함께 응원하고 치킨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했다.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길 잘했다. 오빠도 날 만나고 사랑하게 되어 다행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