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휴가 되었고, 드디어 미루어두었던 아기 용품을 정리할 시기가 왔다. 그동안 열심히 중고거래로 구해놓았던 아기 용품들 거실에 꺼내고, 선물 받고 물려받은 옷들을 모아보니 한가득이었다. 서랍에 넣어두기만 해서 얼마나 있는지 몰랐는데 차차는 옷부자였다. 남편은 본인보다 차차 옷이 더 많다며 은근히 부러워했다. 차차가 딸임을 안 순간부터 옷을 한가득 사고 싶었으나 꾹 참았는데 참 다행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모두 통세척을 한 번씩 하니 하루가 거의 지났다. 그 사이 차차의 맘마존에 놓을 분유제조기와 소독기, 아기 물품을 정리할 트롤리를 닦고 소독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바닥에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정리를 했더니 환도 통증이 있는 오른쪽 골반이 찌릿찌릿 아파서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손수건&신생아 옷 / 겨울 외출복 / 장난감 및 아기띠 등 3종류로 분류해 둔 아기 빨래들을 세탁 돌리고 젖병과 쪽쪽이 등 아기 입에 들어갈 물건들을 세척 후 UV소독기로 건조 및 소독을 진행했다. 분유제조기와 소독기, 분유포트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여러 동선을 고려하여 주방 재배치를 조만간 하기로 했다. 이렇게 모든 아기 옷을 세탁 및 건조하고 준비해 둔 서랍과 트롤리에 정리한 후, 마지막으로 출산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분만 방법에 대해 정하지 않았다. 49대 51로 자연분만에 쪼오금 더 기울어져 있는 편이기는 했다. 이유는 2년 전, 담낭 제거를 위해 복강경을 받은 기억 때문이다. 복강경인 만큼 고작 한마디 정도 되는 구멍을 배에 4군데 뚫었을 뿐인데, 마취가 풀리자마자 나는 엄청난 고통으로 진통제를 빨리 달라며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진통제를 맞은 후에도 반나절을 넘게 허리도 제대로 못 펼 정도로 아파하며 식사 두 끼를 건너뛰었다. 손도 대지 못한 식판을 치워주시며 누군가 내 손에 귤이라도 먹으라며 귤을 쥐어주셨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평소 고통을 잘 참는 편이었는데도 마취가 풀리던 순간은 너무 아팠기에 그보다 몇 배 더 길고 깊게 갈라야 하는 제왕절개가 두렵기만 하다.
물론 진통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자연분만을 하면 당일 바로 움직이고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다고 하기에, 이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고 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자연분만을 목표로 하시는 분으로, 진통 전에 내진을 통해 속골반 크기를 재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실제 진통이 오고 나서야 진짜 속골반이 벌어지는 정도가 정확해지기에 그때까지 내진도 없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임산부의 3대 굴욕이라고 불리는 제모, 관장, 그리고 내진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두렵지만 차차를 만나기 위해선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담담히 마주하고자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작디작은 차차의 옷들을 하나씩 손으로 개고 접다 보니 차차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제 곧이다 차차야. 곧 웃으면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