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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알밤 Dec 18. 2023

32주 차: 출산 전 양가 방문, 시댁과 친정의 차이


연말 겸, 출산 전 그나마 움직일 수 있을 때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보여드리고 결혼식 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만든 가족사진 액자를 전달드릴 겸 양가에 내려가기로 했다. 양가가 모두 지방에 위치한 우리의 이동 동선 상, 시댁에 먼저 들리고 그다음에 친정에 들르기로 했다. 하필 눈보라가 쳐서 무서웠지만 눈보라를 뚫고 4시간 반을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남편이 오는 날이면 늘 고기반찬은 두 개에 상다리 휘어져라 큰 밥상을 차려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우럭회도 사주셔서 시부모님, 형님 부부와 우리 부부 모두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시부모님은 소박하시고 오히려 우리 부모님보다도 자상하신 편이다. 늘 화목한 남편 집안의 분위기를 나는 은근히 부러워했다. 그런데 언니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시부모님은 어디까지나 시부모님이셨다. 그동안에도 약간의 물음표가 있던 부분이 이번 방문으로 인해 느낌표가 되어 다가왔다.


시어머님께서는 내게 대뜸 모유수유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를 하셨다. 당황한듯한 남편이 ‘뭘 먹어도 괜찮지 않냐’며 알아서 하겠다고 둘러대자 시어머님께서는 TV도 안 봤냐며, 어디 애기한테 소젖을 먹이냐고, 적어도 초유는 반드시 먹여야 한다며 모유 수유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셨다. 나는 애써 웃으며 목표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 출산 방법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물으셨고 아버지가 자연분만을 추천하긴 했는데, 그 이유가 ‘산모의 회복’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야 산모의 골반과 자궁이 빨리 회복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자연분만을 좀 더 추천하셨고, 어머니의 경우 내가 환도 선다로 고생한다고 하자 수술로 빨리 낳기를 원하셨다. 그 외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차차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드렸을 때도 양가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내 부모님은 나와 닮은 점을 보셨고, 시어머니께서는 시어머니 자신을 닮은 것 같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다.


또 한 예로, 시댁에서 저녁 식사가 시작되고 시아버님께서 대뜸 ’너는 부모님께 전화 자주 드리니?‘ 하고 물으셨다. 이 질문의 속내를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누구나 예상하듯 ’너 왜 자주 전화 안 하니‘ 였다. 나는 그래서 있는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다. ’저희 아버지는 전화통화 오는 걸 무척 싫어하신다. 늘 응급실에서 일하셨기에, 환자를 보는 도중에 전화가 오면 신경 쓰여서 싫어하셨다. 그렇다고 알람을 꺼놓지는 못하는 게 응급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급한 일 아니면 늘 메시지 하라고 하신다.‘ 라고 말씀드렸고, 남편도 옆에서 ’급한 거 아니면 전화를 진짜 싫어하시더라고요.‘라고 말을 붙였다. 그러자 시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다.


나는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있던 차였다. 나는 남편이 시부모님과 통화할 때, 무언가를 보내주셨을 때 늘 옆에서 같이 통화하며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 부모님이 무언가를 보내주셨을 때 전화를 드리기는커녕 카톡 한번 한 적 없다. 그리고 시부모님께선 남편이 전화를 안 받을 경우 바로 내게 전화하며 남편이 왜 전화를 안 받는지를 캐물으셨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 남편에게 전화하신 적 없다. 여기까지는 집안의 분위기 차이이고, 내가 요구한 적 없는 부분이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시어머님, 시아버님은 내가 전화를 주기적으로 안 한다는 것으로 두분이 돌아가며 눈치 주는 발언을 하셨다. 시어머니께선 남편에게 ‘너도 이제 장가갔으니 사돈댁에 매주 전화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걸 내게 남편은 전달하며, ‘속내가 뭔지 알겠지?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다. 그걸 전달한 남편이 조금 얄미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리해서 하지도 않던 행동을 몇십 년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응 알아, 근데 안 할 거야’라고 답했다.


어째서 며느리는 주기적으로 전화해야 하고, 혹은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걸거나 무언가를 요구하기 쉬운 상대인 걸까.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 사위가 어려워 전화 한 통 안 거셨는데. 추가로 나는 조금씩 눈에 보이는 시어머님의 아들, 딸 차별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딸은 평생 엄마를 짝사랑하고, 엄마는 평생 아들을 짝사랑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보이고 있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아들’이 도대체 뭐길래, 이런 상황이 몇 대째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많은 의문과 혼돈을 지니고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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