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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Dec 16. 2020

꿈의 요람 2

사흘 후. 본성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외딴 숲. 몰락 귀족의 은둔지에 왕실이 보낸 파발이 도착했다. 용무를 마치자마자 파발은 급히 본성으로 말을 달린다. 가지를 드리운 숲의 그림자에 덮인, 을씨년스러운 저택을 기억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에드나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고. 애완 늑대인 머랭이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에 손님이 온 걸 알았다. 몇 분이 지나도 아무 부름이 없었기에 머랭을 앉게 하고 다시금 하던 일에 열중한다. 의자에 올라서서 조리대에 놓인 빵 반죽을 열심히 주무르는 모습이 두 개의 촛불에 비춰 벽면에 새겨지곤 했다. 이내 가느다란 팔이 톡 떨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에드나는 밀가루막이 생길 때까지 쉬지 않았다. 평소엔 어느 정도 하고 있으면 유모가 와서 힘있게 반죽을 쳐주곤 했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는 에드나였다. 의자를 몇 개 더 가져온 후 열기가 남은 화덕 옆에 밀가루를 옮겨 놓을 때. 머랭은 의자 위를 까치발로 오가는 에드나를 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에드나는 손을 닦으며 생각 했다.‘한 시간 쯤 있으면 반죽이 부풀어 오를 거야. 9시가 되면 유모가 잠자리에 보낼 테니까..모양 만드는 것까지 같이 할 수 있겠다.’앞치마를 걸어놓고 또 할게 있는지 살피는 에드나. 곱게 빻아놓은 밀과 하나하나 솎아낸 옥수수 알. 감자스튜는 쉬지 않도록 팔팔 끓여놓았으니 내일 먹으면 되었다. 잼과 피클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커다란 파 화분에 물을 준 뒤 에드나는 머랭을 쓰다듬어 주었다. 빵을 제외하면 오늘 주방일은 여기까지였다.
 
“아가씨...”
 
유모가 주방으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오십대가 넘은 나이에도 늘 기운이 넘치는 노부인이었는데, 지금 에드나를 바라보는 눈과 부르는 목소리 전부가 떨리고 있다. 유모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에드나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워낙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어 수숫대처럼 깡마른 에드나는 흡사 파묻힌 듯한 형상이 되었다.
 
“왜 그래요. 유모...?”
 
유모는 대답하지 않고. 에드나의 손을 꼭 잡고 거실까지 인도했다. 머랭은 다리사이로 꼬리를 만 채 그 뒤를 따른다.
 
거실은 어두웠다. 저녁 한 시간 동안은 향기 나는 밀랍초 30개에 전부 불을 붙여 온 집안을 밝히곤 했는데. 지금 불을 붙인 것은 단 4개뿐이었다. 에드나는 자신의 작은 흔들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마주보는 긴 안락의자가 부모님의 자리였다. 아버지는 일어선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고. 어머니는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바르게 앉아계셨다. 두 분은 늘 이 시간에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곤 했다. 지금은 정돈되지 않은 채 의자 위를 뒹굴고 있는 안경과 실 뭉치를 이용해서.
 
머랭이 에드나의 발을 자신의 폭신한 등위에 올린 채로 눕고, 유모가 의자 옆에 섯을 때. 에드나는 탁자 위에 펼쳐진 두루마기를 보았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종이였다. 테두리에 새겨진 물결무늬가 너무 섬세해서 무언가가 적혀있다는 걸 알지 못할 만큼.
 
“읽지 말거라. 에드나!”
 
석상처럼 서 있던 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낚아채 던지듯 서랍에 집어넣었다. 딸에게는 절대 보일 수 없다는 듯. 에드나는 글씨를 읽으려던 생각이 없었지만 정색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몸을 움츠리며 죄송해요. 조그맣게 말했다. 아버지는 슬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무너지듯 자리에 앉았다. 그 얼굴은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미약한 촛불처럼, 아주 힘에 겨워 보였다.
 
“미안하다..에드나..모두 내 잘못이다..미안하다..미안하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 얼굴을 가릴 생각도 못한 채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어른. 5분이 넘도록 슬픔이 응어리진 굵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와 유모는 가장의 나약한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에드나는 끙끙대는 머랭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제..그만하세요. 에릭.”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남편의 손을 잡아 몸가짐을 바로하게 하고, 손수 눈물을 닦아주는 아내.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꽂아놓은 하나의 비녀처럼. 이 집의 안주인 도라는 늘 한결같았다. 그 얼굴이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이는 것이 어두운 거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에드나는 늘 하듯이 어머니의 침착한 태도에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릿결을 가다듬은 후 눈물을 거둔 에릭은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한 후 똑바로 앉아 딸을 바라본다.
 
“미안해요. 도라. 흉한 모습을 보였구나. 에드나.”
 
유모가 따뜻하게 덥힌 포도주를 가져왔다. 갈증을 달랜 후. 에릭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정계에선 힘을 잃었지만 그는 엄연한 명문귀족이었다.
 
“에드나. 너는 우리 리버레인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나와 네 어머니. 도라 고바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너의 권리와 책임이 깃든 두 지위에 유념하여 들어주기 바란다.”
 
“예, 아버님.”
 
목소리의 떨림은 없었지만 에드나는 몸을 곧게 폈다. 가문의 상속자. 정당한 부부의 외동딸. 어머니가 늘 강조하신 자신의 정체성을 되새길 때마다 몸가짐을 바로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의젓한 딸의 모습에 아버지의 가슴엔 사랑스러움이 벅차올랐지만 그 기쁨은 곧 수백개의 바늘이 되어 에릭의 가슴을 꿰어놓았다. 군인 가계의 피를 이은 도라 고바트는 괴로워하는 남편의 손을 꼭 쥐고, 눈빛으로 말을 이을 것을 독촉한다.
 
“이 나라..프티 불의 국왕..”에릭의 목소리는 다시 떨리고 있었다. “캬라마리제께서 일주일 후 본성 안에 있는 예식장을 사용해야 한다는..명령을..내리셨다..에드나...너는 그날 리버레인과 고바트..네가 원하는 성을 사용하여..하나의 비녀를..머리에 꽂고...”
 
“...결혼을 해야 한다.”직접적으로 생명을 소진한 듯한 탄식.“아아. 우리아가씨에게 왜 이런 일이!”유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은 머랭은 구슬프게 울며 식구들 사이를 기어다닌다. 에드나는 울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말씀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늘 차분한 그 목소리는 진실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20세 생일을 맞는 순간부터 스스로 배우자를 결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 이전에 이루어지는 결혼식은 근본이 불확실하거나. 힘을 잃은 가문의 소년, 소녀를 이름 있는 가문에 보내 그 장래를 위하려는 형식상의 행사지. 하지만 정계가 혼란에 빠져있는. 몇 십년 전 부터 그 의미는 퇴색되어만 갔다.”
 
“우리 가문을 욕보이려는 거야. 분명 노쇠한 정계의 골칫거리 하나를 은퇴시키려는 구실이겠지.”
 
“에릭.”도라는 단호히 남편을 질책했다. 그것조차 의식 못한 채. 에릭은 머리를 감싸 쥐며 환멸과 절망에 찬 숨결을 토한다.
 
“청빈을 자랑스러워하시고 늘 충언만을 올리셨던 조부님을 매장시킨 것도 모자라서 이런 굴욕적인 조혼을 치르게 하다니..이제 열두 살이 된 아이에게!”
 
“제발 진정해요!”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듯 아버지의 무릎에 몸을 던지는 어머니. 절망에 휩싸인 부모님의 모습은 뼈가 시릴 만큼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훌쩍이는 유모의 허벅지에 키가 닿을락 말락하고, 슬픈 곡조로 우짖는 머랭의 등에 드러누울 수 있을 만큼 작디작은 에드나에게 있어서는. 에드나는 부모님 사이로 다가가서 그 무릎에 안기고 싶었다. 어른의 팔에 안겨서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자신이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저 태어나 한 번도 부모 곁을 떠나본 적 없는 어린아이로서 슬퍼하는 부모님의 모습만 봐도 눈물이 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머님. 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모. 울지 말아요. 얌전히 있으렴, 머랭.”
 
에드나는 얌전한 어린 아이의 태도에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태도로 식구들을 달랬다.‘내가 지금 울어버리면 다들 더 슬퍼할 거야. 울면 안 돼.’이 어두운 거실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이 열두 살의 에드나라는 건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똑. 똑. 똑.
 
울고 있던 젊은 부부는 고개를 든다. 유모는 습관대로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애완늑대는 얼른 자기자리로 들어가 머리만 빼꼼히 내 놓았다. 에드나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초에 전부 불을 붙이자, 차례로 피어난 향기로운 숨결이 거실을 환하게 채웠다. 유모가 손님을 맞이하는 동안 에릭과 도라는 눈물을 닦고 속히 주변을 정돈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을 존중하려는 부모님의 귀족다운 태도는 에드나에게 한 가닥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늦은 시각에 실례하겠습니다.”
 
의외의 순간에 찾아온 손님은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얼굴에 베일을 쓴 모습을 보아 미혼이었고, 목소리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듯한 소년의 것이었다. 에릭은 계급표식이 없는 평상용 군용제복을 알아보았다. 아주 젊은 군인인 손님은 가지고 온 작은 나무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선물을 받은 이는 일단 확인할 의무가 있다. 도라는 명주실 장갑을 끼고 우아한 갈색을 띈 나무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말린 꽃잎이 상자 밑에 가득 깔려 있어 색 짙은 향기가 알싸하게 흘러나온다. 그 위에 놓인 단검을 보는 순간. “저건 우리 부족의 사내가 결혼할 여인에게 주는 것입니다.”유모가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손님은 어느새 베일을 벗고 두 손을 모아 잡은 채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에드나는 정말로 놀랐다. 붉은 빛이 감도는 긴 금발에 알껍질 세공품처럼 곱고 아기자기한 이목구비. 마녀에게 미움 받았던 도자기 인형이 요정의 축복을 받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그런 용모가 남자에게도 허락된다는 사실이 어린아이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명목상으로나마 정계에 몸담고 있던 에릭은 훼라 크렘의 서기장인 로제를 알아보았다.
 
“아니..당신은 로제 경...? 어째서 당신이...서, 설마! 불루벤이 퇴출이라도 당한 거요?! 그래서 우리 에드나와?!”
 
“훼라 크렘은 파벌 갈등이나 연세를 이유로 불명예 제대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발음. 차분한 태도. 그 모습은 과연 왕가의 피를 이은 남자로 모자람이 없었다. 에릭은 자신의 조급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유모에게 차와 의자를 내오라 지시했다. 로제는 정중히 사양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나무상자를 기울이며 자신이 온 목적을 말할 뿐.
 
“저의 후견인이시자 훼라 크렘 전 군단장이셨던 키하다님께서. 에드나 리버레인 양에게 드리는 결혼예물입니다.”
 
부모님이 로제와 대화하는 동안. 에드나는 자신에게 온 선물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건 어른 손바닥 길이의 얇은 단검으로 검은 돌을 세모지게 깎아 단단히 감은 세끼 줄로 자루를 만든 것이었다. 검신엔 세공한 유리처럼 깊은 광택이 머금어져 있고, 기름칠해 말린 새끼줄은 아주 예쁜 붉은 빛을 띄었다. 자루 끝에 매달린 검고 하얀 구슬 두 개가 귀여운 느낌을 준다.
 
“저건 흑요석이라고, 아주 예리한 돌이예요. 새끼줄은 꽃에서 딴 염료로 색을 내죠. 말릴 때는 가장 귀한 기름을 바른답니다. 남편 될 사람이 전부 손으로 만들죠...조금 급하게 만들었군요. 이틀 정도 걸린 것 같은데..그런 것 치곤 모양이 제법 나오는 것이, 손재주가 좋은 분 같군요.”
 
유모는 에드나에게 귓속말로 설명해주었다. 고향의 물건을 본 반가움과 바다 건너 야만족의 문물을 접한 신비로움. 두 사람은 잠시나마 불안에서 벗어나 단검에 감도는 투박한 기품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사이 어른들은 한결 사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상태였다.
 
“...로제 경의 말씀은. 저희 에드나와 결혼할 분이 키하다 경이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도라 부인. 키하다님 역시 사흘 전 은퇴식에서..폐하께 직접 명령받으셨습니다.”
 
도라는 시선을 밑으로 둔 채 생각에 잠겼다. 결혼 명령에서 받은 당황함과 슬픔이 그녀의 영민함을 거쳐 어느덧 이성적인 사고로 전환되고 있었다.
 
“이건 훼라 크렘과 우리 가문을 한 번에 모욕하는 처사야. 군인을 무시하고 퇴출 된 귀족을 혐오하는 이탈렌 섭정의 생각일 게 분명해. 아직 젊은 청년에게 열두 살 아이와의 조혼이라니. 키하다 경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분명 더 좋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할 텐데..결혼을 빌미로 침묵의 삶을 강요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캬라마리제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 거역할 방도는 없습니다.”
 
로제는 다시 베일을 써 돌아갈 채비를 했다. 고운 얼굴 위로 흰 천이 둘러질 때 유일하게 자유를 허락받은 눈동자는 에메랄드빛 슬픔을 내비친다. 에릭은 직접 손님을 배웅했고 도라 역시 현관까지 동행했다.
 
“로제 경.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도라는 베일 사이로 들어난 눈을 응시하며 질문한다.
 
“키하다 경의...키하다 경의 나이를. 알고 계십니까...?”
 
“지난 달. 27번째 생일을 맞으셨습니다.”눈을 내리깔며 대답하는 로제.
 
손님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젊은 부부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한참이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머랭은 의자 밑에서 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주 영리한 늑대인 그녀는 시간상으로 에드나에게 빵 반죽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이제 우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저 변덕스런 밀가루 덩어리를 구워야 한다. ’현명한 판단을 내린 머랭은 의자 밑에서 나왔다. 유모와 에드나를 향해 까웅까웅. 짖어 댄 후 주방 입구에 앉아서 꼬리를 살랑거린다. 그 모습을 본 에드나는 빵 반죽이 부풀었을 거라면서 급히 일어났다.
 
“빵 굽는 걸 돕도록 해라. 에드나.”
 
거실에 돌아온 어머니는 평온하게 말씀하셨다. 어느새 빵 반죽 생각으로 가득한 에드나는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의젓하게 걷도록 해라. 늘 조신해야 한다.”깜짝. 어머니의 눈치를 살핀 후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에드나. 머랭은 앞발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누워 어린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다.
 
“마님. 아홉시가 되면 아가씨를 잠자리에 보내겠습니다.”
 
“아니에요. 유모. 빵이 다 구워질 대까지. 잘 보고..잘 보고 배우게 해 줘요.”
 
유모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혼란이 일었지만 어머니와 딸. 두 여인에게 유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곧 그 명령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도라는 차분하게,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재차 부탁했다.
 
“잘 가르쳐 줘요. 적당한 무게로 나눠서..모양을 어떻게 내고. 화덕에는 언제 집어넣는지. 얼마만큼 구워내야 하는지.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도록,..모두 가르쳐 주세요.”
 
33세의 도라는 한 가문의 안주인이었다. 딸의 결혼이 결정된 지금. 그녀는 침착하게 현실을 응시하고 있다. 지극히 어른스러운 그 모습이 유모에겐 애처롭게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유모 앞에서만 눈물을 보였던 도라의 소녀 시절이 떠오르는 까닭은.
 
“염려하지 마세요. 마님. 에드나 아가씨는 잘 해나가실 테니까요..”
 
유모는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아가씨. 금방 갈 테니 조그만 기다리세요.”주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유난히 넓고 포근해 보이는 이유는 유모가 거구의 야만족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에릭은 예물로 보내온 단검을 정중히 수습한 후.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벗었다. 21살의 봄. 부모님에게 물려받았던 결혼 예물을.
 
“키하다 경 측에선 예물을 보내왔어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우리도 예의를 갖춰야 해요.”
 
항상 올바른 아내의 조언이었다. 망연히 목걸이를 바라보던 에릭은 입술을 깨물었다. 굳센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에릭을 믿어주었고 지금도 남편을 믿고 있는 도라를 위해. 에릭은 목걸이를 내려놓으며 알고 있어요. 차분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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