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요?
와인을 즐기면서 마시다 보면 와인이 가진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 매력 중 하나는 와인이 살아있는 유기체 마냥 같은 년도에 병입 된 같은 품종의 와인조차도 조금씩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맛이 같은 와인이라도 그 날의 분위기나 같이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와인의 맛은 제각각으로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듯 변화무쌍함의 매력을 가진 와인에 빠지다 보니 내 지루한 삶의 한 부분도 변화무쌍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지인들로부터 오는 와인을 빙자한 유혹이다. “좋은 등급의 주브레 샹배르탱 마시려고 하는데 이번엔 꼭 참석하세요.”라든가, 때로는 보다 노골적인 유혹으로 말만 들어도 달콤한 샤토 디캠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당장이라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달콤한 와인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연인이 아닌 이상, 비싸고 좋은 와인을 같이 마시고 하자 할 때에는, 보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법이다. 물론 이런 꿍꿍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마시고 싶은 와인도 가끔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만큼 와인의 유혹은 때로는 거부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애시당초 인류 역사상 거부하기 힘든 황홀경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인류에 등장할 때부터 그 힘의 유혹은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런 와인에 대해 생각하자니, 여기 무서운 꿍꿍이를 가지고 와인을 미끼로 한 치명적인 유혹을 보여주는 소설 하나가 떠오른다.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en Poe)의 『아몬틸라도의 술통』(The Cask of Amontillado)이라는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늘 머리맡에 두고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짧은 단편 하나 읽고 잠들기 좋은 포우가 쓴 다수의 단편 소설 모음집 가운데 중 하나에 속한다.
공포와 광기로 대변되는 『검은 고양이』를 쓴 포우의 소설답게 이 소설 또한 인간 본연의 욕망을 광기에 휩싸인 채로 친구를 살해하는 으스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육제 축제가 한창인 밤, 주인공인 몬토레소르는 자신을 항상 모욕하고 괴롭힌 친구인 포르투나토를 자신의 지하 와인 동굴로 유인해서 동굴 벽속에 산채로 가두어 죽인다.
말만 들어도 섬뜩한 이 소설은 최후에 변질되어가는 인간 본연의 잔인성과 광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 광기에 대한 고찰이 아니니 넘어가고, 하고 싶은 이야기인 와인의 치명적인 유혹에 대해서만 집중해야겠다.
혹자는 이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 포르투나토는 바보인가? 와인이 좋기로서니 동굴로 끌려가서 바보처럼 당하다니...’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은 포르투나토는 와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주가에다가 와인에 대한 감별에 대한 열성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었다.
동굴로 끌려 들어가면서 친구가 건넨 매독 와인을 계속 마시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졌고 아몬틸라도 감별에 대한 욕심으로 친구의 숨겨진 잔인한 속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는 지하 동굴 석회로 바른 벽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리 와인이 좋거늘, 와인이 미끼가 되어 그 희생양이 되는 소설은 와인 애주가 중 한 명으로서 그다지 탐탁지 않다. 여하튼 포르투나토를 죽음으로 이끈 아몬틸라도에 대해 찾아보니 스페인 쉐리 품종 중 하나이다. 스페인어로 아몬티야드라고 읽어야 하며 맛은 미디엄 드라이하다고 한다.
사실 포트와인과 셰리주는 강화 와인(와인에 포도 브랜디를 첨가한)으로 알코올 함량이 높아서 잘 마시지 않는 와인이다 보니 품종이 낯설기만 하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에 드는 생각은 작가 포우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보다는 와인이 미끼가 될 수 있다는 내 삶에 대한 경고였다. 좋아하는 것에 눈이 멀어 판단을 흐리는 행위는 조심하자는... 지극히 실용적인 경고 말이다.
허나, 포르투나토를 바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 핼러윈 데이날, 무언가 내면에서 꿈틀대고 싶은 날, 연락을 해온다. “지하 저장소에 잘 익은 로마네 꽁티가 있어. 와서 같이 마시자. 근데 혼자 와야 해.” 아마도 혼자라는 말이 가진 속성보다 와인에 대한 유혹이 지하 저장소로 들어가는 속물근성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선택은 두 가지다. 핼러윈 날, 잘 차려입고 지하 저장소로 들어가서 상상해왔던 와인 맛과 속물근성을 즐기던가... (물론 뒷 일은 나도 모른다). 다른 한 가지는 『아몬틸라도의 술통』을 떠올리며 정중히 거절하며 집에서 혼자 궁상스럽게 와인을 홀짝이던가.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삶은 B(탄생 birth)와 D(죽음 death) 사이의 C(선택 choice)라고 하지 않았던가! 와인으로 인한 변화무쌍한 유혹이 삶의 선택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깐, 지금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이런 치명적인 유혹은 천재 작가인 포우의 『아몬틸라도의 술통』에만 존재할 텐데도 말이다. 걱정을 붙들어 매고 이참에 셰리주 한잔 시도해 보는 것이 현실적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