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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Nov 05. 2019

모기와의 전쟁

살려주고 싶은 모기가 있다면요?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는데 요즘 모기한테는 안 통하는 얘기인가 싶다. 처서가 지난 지 한참이나 지난 깊어가는 가을에 모기 타령을 해야 하니 말이다. 올여름은 어쩐 일인지 모기들의 기세가 약했다. 워낙 기온이 올라간 데에다 비까지 내리지 않아서 모기의 수가 줄었다는 말을 뉴스에서 들은 적 있다. 가을이 되었지만 가을치곤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었고 가을비가 의외로 많이 내려서인지 숨어있던 모기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모기는 창문 틈새나 현관문 사이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 들어와 어느새 집 안 구석에 포진해 있다가 새벽녘 잠이 들만 하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나마 새벽녘까지 기다리는 모기들은 양반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피를 강탈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티브이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딴짓을 할 때 당한다. 정작 여름에 필요 없었던 모기 약과 전자 매트가 간절히 필요할 지경이다.

나는 모기를 보면 바로 죽인다. 물론 가장 큰 무기는 두 손바닥이다. 순간적으로 두 손을 “짝”하고 마주쳤을 때 그 사이에 모기가 납작하게 퍼져 있으면 기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행여 모기가 두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가면 일단 실망감을 추스르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남은 한 마리라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게 된다. 진정 모기와의 전쟁이다.

모기는 백해무익한 해충이다. 오죽하면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뱀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인다고 하니 말이다. 1년에 70만 명이 모기로 인해 사망한다니 놀라기 그지없다. 나는 모기가 내 피를 가져가면서 전염병을 옮기는 것도 싫지만 더 싫은 건 잠잘 때 들리는 “에~엥” 하는 소리다. 그 소리는 마치 먼 진공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울림을 가지고 있다. 그 짜증 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잠들기 전에 숨어 있는 모기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모기라면 질색팔색 하던 내가 평생 딱 한 번, 모기에게 동정심과 불쌍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때는 한 여름이었고 나는 친구네 오피스텔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친구는 작업실 겸으로 오피스텔을 사용하고 있었고 딱 일주일 만에 오피스텔을 방문하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같이 책을 보고 작업을 하다가 출출해져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나는 친구네 부엌살림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나서서 그릇을 꺼내기 위해 찬장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어디선가 얇은 먼지 같은 것이 바람에 흔들려 하강하는 낙하산처럼 공중에서 갈지자 모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모기였다.(일반 모기는 절대 그렇게 움직이지 않기에) 평상시 같으면 모기를 본 이상, 내 두 손바닥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내 두 손이 움직이기 전에 내 두 눈에 들어온 모기는 내 손바닥 움직임보다 훨씬 느려 보였다. 세상에나, 그렇게 마르고 힘없는 모기는 처음 보았다. 훅~ 하고 불면 툭~ 하고 날아가 공중에서 분해될 거 같았다.

“어머나, 내 이런 모기는 첨 본다. 여기 찬장에 오래 갇혀있었나 보네. 이거 원, 내 피라도 줘야 해?”

나는 혼잣말처럼 말했고 내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웃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망설이는 나를 대신해서 모기를 잡기 위해 내 옆으로 왔다. 모기는 제대로 날지 못한 채 싱크대 쪽에서 힘없이 맴돌고 있었다. 아마 친구는 수고롭지 않게 모기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나는 한마디 더했다.

“그냥 놔두자. 우리가 안 죽여도 곧 가겠어. 내 살다 살다 모기가 불쌍한 건 첨이야.”

둘이는 마치 생명 하나를 방생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되어 모기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래, 잡더라도 피를 빨리게 해서 기운 좀 차린 다음에 잡지 모.”

모기가 들었다면 왠지 더 잔인하게 들렸을 말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모기가 그리도 싫은 이유는 그놈은 약삭빠르게 움직이고 잘 숨어 있고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고 내 피를 뺏어가면서도 결국 간지러움까지 남기는 아주 전술에 능한 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피스텔에서 오랜 시간 동안 찬장 속에 갇혀 아사 상태가 된 모기는 내가 알던 강한 모기가 아니었다.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모기는 나와 전쟁은 커녕 일방적인 죽음으로 끝났을 정도로 약해 보였다. 모기를 바로 죽이지 않은 건 생명이 소중해서라기 보다 전쟁에서 나보다 약해 당장 죽을 거 같은 적군에게 다시 총칼을 들이대지 못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싶다. 그 또한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이 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냥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두 손바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

아무튼 내일부터 쌀쌀해진다니 이제 모기 와의 전쟁에서도 잠시 휴전을 할 수 있겠다. 최소 내년 여름까지 모기가 내 앞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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