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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Nov 12. 2019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

어둠의 무게를 발견하다

 잘빠진 글래머스한 여성들이 나체로 멜랑꼴리 한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선정적이다. 하지만 어디가 상체이고 어디가 하체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살찐 여성들이 환희의 표정을 한 채로 나체로 춤추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면 그것은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아방 가르드(Avant-garde)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는 바로 이러한 전위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슬로 모션으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육중한 여성들의 춤에 계속 집중하자니 그 이미지는 더 이상의 여성이 아닌 인간을 덮어 싼 떨어지지 않는 어떤 덩어리들의 움직임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이래서 불편한 이미지가 예술로 승화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지 모르겠다. 한 참 동안의 압도적인 춤의 향연을 첫 장면부터 강요받아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강렬한 이미지에 몰입하게 된다.

이윽고 육중한 여성들의 몸을 예술로 응시하고 있는 미술관 관장 수잔(에이미 아담스)이 나타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검은 슈트를 입은 수잔은 화면을 가득 채웠던 나체의 육중한 여성들과 한눈에 보기에도 대비될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답고 날씬하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후의 수잔의 모습에서 그녀의 삶 속의 무거운 짐이 마치 육중한 여성들의 불필요한 살 무게의 흔들거림처럼 가볍게 요동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불편했던 첫 장면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수잔의 삶이 불편함을 야기하는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부와 멋진 직업, 잘생긴 남편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수잔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이다. 남편은 사업 차 출장을 가고, 혼자 남겨진 수잔은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19년 전 헤어진 전 남편으로부터 온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초고를 우편으로 받는다. 이후 소설을 읽게 되면서 수잔의 겉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어두운 인생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는 수잔의 현실과 전 남편 에드워드를 대변하는듯한 소설 속 주인공 토니의 픽션이 교차되는 액자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픽션일 줄만 알았던 소설 속 이야기는 알고 보면 수잔에게 버림받았던 전 남편 애드워드의 상처가 만들어낸 과거의 상흔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수잔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수잔은 에드워드가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라는 엄마의 말을 부정하고 가난하지만 로맨틱한 에드워드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 자신도 엄마의 속물근성을 물려받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잔인한 방법으로 에드워드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 화려한 삶을 살게 되는 수잔. 하지만 표정 없는 수잔의 삶 또한 에드워드의 남겨진 상흔 마냥 우울해 보인다.

에드워드 자아이기도 한 소설 속 토니의 삶은 너무 비참하다. 여행 중에 생긴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아내와 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나약함에 대한 토니의 절규는 평상시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했던 말의 인용이다. “넌 로맨틱하지만 나약해” 수잔의 이 한마디는 작가가 되려는 에드워드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기도 이 한마디는 에드워드에게 글을 다시 쓰게 만든 원동력이자 수잔에 대한 복수의 모티프로 작용하게 된다.

19년 만에 수잔에게 건넨 소설은 수잔에 대한 복수치 고는 너무도 지적이고 로맨틱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끌어내어 수잔에게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에드워드의 복수는 통렬하고 약간 섬뜩하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그 섬뜩함은 에드워드가 감당해야 했을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의 복수 또한 설득력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싱글맨>에 이어 두 번째로 보게 된 톰 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스> 작품은 그가 명품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품격 있는 세련된 이미지로 인해 영화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의상부터 소품, 색깔, 음악, 분위기 등 눈과 귀를 자극하는 감각적인 이미지가 보는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다만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싱거움을 전달할지도 모르겠다. <싱글맨>에서 그랬듯이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도 앤딩 장면은 단순하지만 절제된 미를 보여주는 듯하다. 첫 장면의 강렬한 인상과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에드워드와 토니 역할을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에이미 아담스의 공허한 눈빛 연기도 가슴에 남는다. 누군가에 준 상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채울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밤을 지배하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잠 못 드는 밤이 되어 야행성 동물이 될 수밖에. 수잔의 마지막 공허한 눈빛에서 앞으로 그녀를 지배하게 될 수많은 밤의, 즉 어둠의 무게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흔들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은 살덩어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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