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빌어먹을 방송 바닥

by 지집아이

# 서른여덟, 시집 안 간 둘째 딸 <1화 >


어두운 비행기 안, 불이 켜지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저희 비행기는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승객들 그리고 서둘러 가방을 챙기는 여행객들로 인해 기내가 어수선해졌다. 그들과 달리 조금의 미동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한 여자, 이제 막 서른여덟이 된 오지희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밤하늘의 별처럼 제주 바다를 환한 불빛으로 수놓고 있는 갈치잡이 배. 지희는 그 배들을 바라보며 낮에 만난 의사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이거... 심각한데요. 여기 척추 휜 거 보이시죠?"

"아, 네..."

"두 번이나 휘었어요. S자로. 이러니 안 아플 수가 있나... 목 디스크 있는 건 아세요?"

"네..."

"하... 저기, 환자분... 이 상태면요. 허리고 목이고 1~2년 안에 무너집니다."

"..."

"마흔도 안 되셨고만... 대체, 뭐 하는 분이세요?"

"네?"

"하시는 일이요. 직업..."


'쿵', 활주로에 내려앉은 비행기의 충격으로 생각에서 벗어난 지희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혼잣말을 거칠게 내뱉었다.


"빌어먹을 방송 바닥..."


제주 국제공항 1번 출구 앞.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로 흰색 차 한 대가 비집고 들어왔다. 차를 발견한 지희는 볼을 부풀려 얼굴 근육을 푼 뒤 미소를 지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아이고, 김 여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지희를 보며 웃는 운전석의 김 여사, 올해 예순다섯 된 그녀의 엄마다.


"누가 들으면 며칠 다녀오신 줄 알겠습니다요. 어머! 눈 충혈된 것 좀 봐. 피곤해?"

"음... 조금?"

"그봐. 언니 집에서 자고 내일 오라니까..."


엄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핸들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지희.


"왔다 갔다... 그게 더 피곤해."

"하루에 비행기를 두 번 타는 것보단 낫지."

"괜찮아. 집에 가서 씻고 자면 돼. 내일 대본도 써야 하고..."

"뭐? 오늘 녹화했는데, 내일 또 일해?"

"어... 스케줄이 꼬여서 그렇게 됐어."

"사람 죽이네... 아, 맞다! 병원은? 갔다 왔어?"

"어? 어..."

"뭐래?"

"괜찮데. 걱정 마."


순간, 조용히 한숨을 뱉어내는 엄마.

분명,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러니까 그놈의 방송 작가는 뭐하러 해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터.

지희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왜... 왜 웃어. 지지배야."

"아닙니다요. 어머니~ 운전에만 집중하시옵소서."


지희의 익살에 비시시 웃는 엄마.

두 사람을 태운 차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가로등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흔하디 흔한 핸드폰 벨소리가 한참을 시끄럽게 울어대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지희가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는 그녀. 반가운 사람인 듯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 이게 누구십니까~"

"헤헤. 잘 지내, 오 작가?"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언니는?"

"네가 서울에 없는데, 잘 지내겠니?"

"어머, 왜 또 이러실까? 남편도 있으신 분이~"


지희가 '쿵'하면 '짝'으로 대답하는 발신자의 정체는 지희의 인생 친구인 2년 선배, 임은영 작가다.

다큐멘터리 PD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소위 '글빨' 좋은 방송 작가이자, 노처녀를 벗어난 지 갓 1년 된 새색시. 참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별명은 '폭탄'이다.


"그니까, 그 남편~ 너한테도 만들어주려고."

"뭐... 뭐? 갑자기 뭔 소리야."

"뭔 소리긴, 내가 너 소개팅 잡아놨단 소리지. 하하하."

"소... 소개팅?"




-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