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여덟, 시집 안 간 둘째 딸 <2화 >
제주 시내 공영주차장. 말쑥하게 차려입은 지희가 주차를 한 뒤 시동을 껐다.
'후...'
숨을 길게 뱉어내며 시간을 확인하자, 약속 시간까진 10여분 남은 상황. 조수석 바닥으로 손을 뻗어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구두를 들어 올렸다. '괜찮겠지?' 다섯 달만에 만난 구두를 보자, 벌써 뒤꿈치가 쓰라린 것만 같았다. 마치 앞날이 예상이라도 되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슬리퍼에서 구두로 갈아 신는 지희. 그리고는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풀메이크업 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팩까지 했는데, 피부 왜 이러니... 어머! 이건 뭐야? 설마... 주름이야?"
그렇게 한참을 구시렁구시렁하다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열흘 전, 소개팅 주선자인 은영 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것.
"나이가 좀 많은 것 빼곤 완전 괜찮아. 마흔둘? 셋?"
"아..."
"근데, 외모가 나쁘지 않아. 동글동글한 느낌? 키도 178인가 그렇고."
"아..."
"남편이 그러는데, 성격도 참 좋대. 서글서글하니~"
"아..."
"대기업에 다니다가 뒤늦게 요리에 꽂혀서 유학 갔다 왔나 봐. 그래서 아직 결혼을 못한 것 같아."
"아..."
"지금은 부산에서 큰 레스토랑 운영하는 오너이자 셰프래. 괜찮지?"
"아... 셰프... 자... 잠깐만! 부... 부산?"
"응. 왜?"
"왜라니. 난 제주도 살잖아. 어떻게 소개팅을 해."
"걱정 마."
"응?"
"그 사람이 제주도로 가겠데. 너 만나러. 하하하. 대박이지?"
"뭐... 뭐라고?"
소개팅을 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오겠다는 남자. 아니, 온 남자.
그는 어떤 사람일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지희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둘러 걸어갔다. 약속 장소로.
'띠링 띠링'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지희.
그 순간, 오른쪽 구석에서 벌떡 일어나 벌건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부산... 셰프님?"
'맙소사. 부산 셰프님이냐니...' 지희는 최악의 인사말을 건넨 자신의 입을 당장이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하하. 네. 김진명입니다."
지희의 실수를 깔끔한 인사말로 덮어버리는 남자. 그의 첫인상은 은영 언니가 말한 그대로였다.
특히, 동글동글한 얼굴과 몸매, 서글서글한 눈매가 그러했다.
"부담스러우셨겠어요. 소개팅 장소가 제주도라..."
뻔하디 뻔한 인사말과 대화를 잠깐 주고받은 뒤 지희는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조심스레 건넸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빨랐고, 또 단호했다.
"아뇨. 전혀요. 저는 운명도 노력해야 얻어지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운명 뒤에 노력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지희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마치 한 몸인양 쓰는 그에게 순간, 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 그는 쉬는 날 미술관에 가거나 공연장을 찾기보단, 집에서 종일 뒹구는 걸 즐긴다 했고, 여행을 다니기보단 맛집을 다니는 게 좋다고 했으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도전하기보다는 익숙하고 안전한 것을 추구한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그의 성향에 지희의 관심은 점점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특히, 그가 '책'과 '글'에 대해 말할 땐 실망감마저 들었다.
"네? 책이요? 거의 안 읽어요. 솔직히 재미없잖아요. 하하하. 나는 한 장만 읽어도 졸리던데..."
심지어 그는 다수가 자신과 같을 거라 단언했고, 그러면서 '책'을 좋아하고 '글'로 먹고사는 지희가 신기하다 말했다. 아니, 정확하게 '별종'이란 단어를 써서 표현했다. 물론, 그는 '이상하다'거나 '별스럽다'가 아닌 '특별하다'는 뜻으로 한 말일 수 있겠지만, 그 의미는 더 이상 지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늦은 오후.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다음을 기약하는 그에게 지희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얼버무려버렸다. 20대 땐 나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표정도 잘 짓고, 빈말도 나름 잘했었는데... 서른여덟인 지금은 그게 잘 안 된다. 그 이유가 경험 때문인지, 세월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제주도에서의 첫 소개팅이...
-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