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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집아이 Nov 03. 2021

'글태기'를 느낀 작가의 추억

<2. 그땐 그랬지>

<출처 : 제주 4.3 평화재단>


  아마도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기사에 난 공고를 보고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던 게.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아니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영화 시나리오>, 이 여섯 글자가 꼭꼭 숨어 있던 내 의욕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웃음거리만 되는 거 아냐?'


  두려움과 걱정에 잠시 망설였지만, '작가의 이름'도, '작가의 경력'도 비공개로 심사된다는 말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영화계에선 말 그대로 '듣보잡'일 텐데,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 아니겠나. '그래, 한 번 해보자!' 두 주먹 불끈 쥐고 결심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조급증이 '훅' 달려들었다. 정해진 시나리오 분량은 100쪽 내외, 마감 날짜인 1월 15일까지 '완성본'을 제출하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이었다.


  낮에는 방송작가, 밤에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


  나의 이중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잠시 숨 돌릴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행복하다'는 감정에 빠져 글을 쓰고 또 썼다. 마치 밤마다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어쩔 땐 제주도민 작가로서 뭔가 의미 있는 일에 도전했다는 착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과 착각 사이를 왔다 갔다 한지 두 달, 마감을 이틀 남기고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데 성공했다. 


  '보내기' 클릭

 

   마침표를 찍는 순간,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 당선에 대한 기대?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고개를 들 무렵, 공모전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결과는 낙선(落選).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 그렇지.' 나 역시 기대하지 않았기에 조금도 속상하지 않았다.

<출처 : 제주 4.3 평화재단>


  다만, 딱 하나 궁금한 건 나의 실력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봤을까?'

  '재능은 있는 걸까?'


  총 66편의 작품 중 몇 등이나 한 건지, 1차는 통과를 한 건지, 그 무엇도 알 수 없단 사실이 상금 5000만 원보다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란 생각으로 다시 본업에 몰두한 지 한 달 후쯤, 낯선 번호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작가님, 제주 4.3 평화재단인데요."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작가님 작품에 관심이 있으셔서요. 그분께 작가님 연락처를 알려드려도 될까요?"


  대체 누굴까? 다른 사람 작품과 헷갈렸나? 혹시... 보이스피싱?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켰고, 그렇게 꼬일 데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다 풀어내기도 전에 낯선 번호가 다시, 핸드폰을 울려댔다. <4.3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심사를 했다는 바로 그분이었다. 


  "제 선택은 작가님이었어요."


  그는 최종 심사에 올라온 세 개의 작품 중에 내 작품이 있었다고 했다. 1등을 차지한 <내 이름은>이란 작품과 끝까지 싸우다 아쉽게 탈락했다며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잠깐만... 그럼 내가 2등을 했다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내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영화 제작자이자 평론가라는 그는 감사하게도 나의 작품에 대해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세세하게 이야기해주며 그동안 답답했던, 또 궁금했던 부분을 해결해주었다. 홈페이지에 <심사평>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다시 들어가 확인해보니, 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건, 바로 그의 제안.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코로나19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여건이 된다면 자신이 받았던 감동 그대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혹시 자신과 계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며, 시나리오 계약금이나 계약 방법, 조심해야 할 내용 등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뒤 몇 번의 연락을 더 주고받았지만, 아직 최종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그래도 좋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작품이 좋다, 감동받았다.'며 칭찬해주지 않았는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조금은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더 높은 꿈을 꿀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는가! 그거면 됐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분명 그땐 그랬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을 느끼며 글을 쓰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난 지금, '지독한 글태기'를 겪고 있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겨낼 순 있는 건지 그 무엇도 알 순 없지만 한 번 해보려 한다. 패기 하나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던 그때처럼. 나의 또 다른 꿈이 추억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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