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연애를 못하는 진짜 이유

by 지집아이

# 서른여덟, 시집 안 간 둘째 딸 <5화>


"연애는 하니? 남자 친구는 있어?"

"결혼은 아예 포기한 거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언니와 동생. 오늘도 지희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우, 답답해.', '쟤는 왜 자기 얘기를 안 하는 거야?' 자매들의 불만이 뒤이어 들려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둘째 딸, 지희는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던 걸. 세 자매가 모여 이야기를 할 때도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할 뿐,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기쁜 일이 있어도 혼자 간직했고, 슬픈 일이 생겨도 혼자 삭히는 아이, 그게 바로 지희였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비밀 보장' 같은 거 말이다. 한 집에 여자만 넷이니 오죽하겠는가!


물론, 지희도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았다. 남자 친구한테 선물을 받았을 때, 잘생긴 남자 친구를 자랑하고 싶을 때, 심지어 남자 친구와 싸운 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희의 선택은 늘 입을 '꽉' 다무는 쪽이었다.


지희의 마지막 연애는 서른다섯.

봄이 고개를 들 무렵 그 사람과 이별을 한 지희는 처음으로 입을 '꽉' 다물고 살아온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랬다면, 분명 가족에게 특히 부모님께 큰 상처로 남았을 테니까. 그를 만난 건 지희가 서른셋을 꽉 채운 12월, 겨울이었다. 그는 두 살이 더 많았고, 키가 컸으며 특히 웃는 미소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예쁘다.', '보고 싶었다.', '네가 좋다.'를 서슴없이 말로 표현하는 솔직하고 다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희는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서른넷이던 해 늦여름, 그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부모님은 뭐하시죠?"


짧은 인사 후, 그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초면에 그것도 첫 질문으로 들을 말은 아니었기에 불편했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씀드렸다. 하지만, 대학교수인 그녀에겐 의사 남편을 둔 그녀에겐 기울어져가는 사업을 붙잡고 있는 지희의 아버지가, 평생을 주부로만 살아온 지희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그 뒤로 질문인지 취조인지 모를 질문이 몇 번 더 던져졌고, 30분도 채 되지 않은 대화 끝에 그녀는 혼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가씨는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데, 집안이 영... 탐탁지 않네."


맙소사. '그럭저럭'이라니, '탐탁지 않다.'니... 이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흔들렸고, '내가 해결할게.'란 그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지쳐갔고, 눈에 띄게 말라갔다. '괜찮다.'고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희는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의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서른다섯, 설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는 결국 무너졌다. 지희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 손에 종이를 쥔 채 서럽게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그 종이에는 그의 어머니가 적어준 일명 '혼수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혀있었고, 그건 마치 '이래도 결혼할래?'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만 같았다. 그는 결국, 어머니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날, 지희는 '부모님을 버리겠다.'는 그의 손을 잡고 이별을 통보했다.


"우리... 그만하자."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께 상처 주지 않고 상견례할 자신이, 살면서 그를 힘들게 하지 않을 자신이, 무엇보다 그의 어머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지희의 마지막 사랑은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가족들 어느 누구도 지희의 상처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 알면 안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께 '자책감'만큼은 절대 주고 싶지 않아서다. 그것이 지희가 여태 입을 꾹 다물고 살아온 이유니까.


그로부터 3년 후, 혼자 삭히기에 성공한 지희는 이제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그 상처가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지만, 이젠 그 흉터를 바라볼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희는 다시 꿈을 꾼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꿈', '그 사랑이 상처가 되지 않는 꿈.'을 말이다.



-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