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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Dec 06. 2022

성폭력범의 아내에 대한 소고

얼마 전, 전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역겨운 성폭력을 저질렀던 범죄자 한 명이 만기 출소했다. 그가 살던 거주지 지역민들은 난리가 났고, 다른 지역에서도 그와 그의 아내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기자들은 이를 실황중계하며 조회수를 올리고 분위기도 더욱 끌어 올린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다. 다만 이 사안이 분노 표출로만 그치는 것은 아쉽다. 기간의 차이가 있고, 뉴스에 실명이 보도되었는지의 여부가 다를 뿐 강간, 살인, 강도 등을 저지른 사람들은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있을 뿐 사회로 복귀해서 우리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강력범죄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할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이들의 사회 복귀를 전제로 지역민들도 안심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하튼 현재 이 사안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설왕설래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 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완전히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댓글에는 끼리끼리 모여산다, 변태라더라 등 온갖 모욕적인 언사들이 넘쳐난다. 반응마다 차이는 있지만 요점은 어떻게 저런 더러운 놈이랑 연을 끊지 않고 부부로 같이 살아갈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아내가 연을 끊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아내 역시 의지할 곳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인들은 내 남편이 그 사람인 걸 다 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기존의 대인관계가 모두 단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법률적 연좌제는 갑오개혁 때 폐지됐지만 사회적 연좌제는 굳건하다. 이런 사안에서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왕래를 지속하기 쉽지 않다. 아내는 세상에 혼자 남았고 유일하게 말 상대가 되어줄 사람은 죽일 놈이라도 남편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둘째, 생명의 위협이다. 위에서 말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민낯을 알게된 이상 고독하게 혼자 살아갈 지언정 연을 끊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아내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언젠가 감옥을 나올 남편은 세상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내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무런 사회생활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구석에 앉아만 있다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제일 가까우면서도 만만한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고 감옥에 다시 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그의 아내가 그와 여생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비단 이 사람 뿐일까.


강력범죄자의 가족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을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버림받은채 방치되거나 그로 인한 분노로 엇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누적되어 알게모르게 범죄의 증가 및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사회적 개선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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