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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U Jan 02. 2020

누가 아내에게 요리를 시켰나.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아내는 오전부터 호들갑 이었다. 부엌 구석에서 시리얼을 퍼먹으며 어제 미리 사다 놓은 재료들을 꺼내놓고 생각에 잠기더니 빠트린 게 있는지 수면바지 차림으로 패딩을 끼워 입고 시장을 다녀왔다. 그렇게 모든 재료를 꺼내놓고 씻지도 않은 채 머리를 질끈 묶고 시작된 그녀의 요리. 배추를 썰고 고기를 재우고 버섯을 십자모양으로 예쁘게 칼집 내며 도마 위 칼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지는 동안 양파, 디포리, 파뿌리 등을 넣은 육수는 우리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큰 냄비 속에서 펄펄 끓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부모님이 첫 방문을 하시는 집들이 날. 귀찮으니 대충 나가서 사먹자는 내 말에 아내는 마치 모욕을 당한 듯 한사코 도리질을 하며 자신이 손수 대접한 음식을 내보이겠다며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평소에 음식이라고는 사먹거나, 배달시켜 먹거나 둘 중에 하나였던 우리 부부에게 아내의 요리선언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쩌거나 그녀에겐 중요한 일인 듯 보였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부모님에게도 그리 전했다. 이번 기회에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어보겠다며 내심 기분 좋은 내색을 보이시는걸 보고 원래 다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부엌은 한바탕 폭격이 이루어진 듯 가스레인지 앞은 넘쳐난 육수 얼룩으로 엉망이 되었고, 양파와 배추 밑 둥, 당근을 다듬고 난 껍데기 같은 음식물들이 하수구에 패대기 쳐진 그대로 산을 쌓아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부모님 도착시간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무언가 불행의 씨앗을 본 듯 부엌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인상을 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내가 뭘 도와줄까?”, “아냐! 저리 치워. 청소기나 밀고 집안정리 좀 하고 있어.” 날카롭게 쏘아대는 그녀에게 나는 뭐라 말을 더하려다 돌아서 시키는 대로 청소기를 밀고, 쇼파 위 방석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도착 30분 전. 여전히 그대로 인 주방 속 포화를 바라보며 뭐라 말을 하려고 하던 찰나 “띵동” 소리가 들리며 현관 밖 화면에 부모님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색이 되던 그녀의 얼굴. 그 때 나는 직감했다. 아 이것은 실수였다. 역시 밖에서 먹는 거였어. 발을 동동 구르며 난처해하는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현관 밖에 부모님을 서계시게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문을 열고 부모님을 들였다.


“아이고 우리아들~ 여기가 우리 아들 집이구나! 어디 한번 보자~”

“이거 느그 엄마가 준다꼬 집에서부터 가져온 고추장하고 각종 반찬이다. 받아라.”

동시에 말을 하며 한 보자기를 내게 안기고 들어서는 부모님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와 주방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이기 다 뭐꼬.”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외투도 벗지 않고 부엌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얼어붙은 부모님과 부엌의 난장판을 등뒤 배경으로 씻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에 어색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마치 물감놀이 장난을 하는 어린아이 마냥 팔과 얼굴에 덕지덕지 얼룩이 묻어있는 나의 아내였다.


황급히 부모님을 마루로 끌고 와서 앉히고 오는데 불편한 건 없었는지, 큰 형은 잘 지내는지 이런저런 말을 아무렇게나 던져내며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 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진 채로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허둥지둥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그녀. 얼빠진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부모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내 말에 대꾸하며 주방을 제외한 우리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다.

마침내 차려진 한 상. 오늘의 집들이 요리는 ‘밀푀유 나베’다. 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사실 별게 없다며 나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녀. 그러게 내가 괜한 일 벌이지 말라고 얘기할 때 못 이기는 척 따라오지.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든담.


처음에 본 광경은 이미 싹 잊은 듯, 이렇게 멋진 요리는 처음 본다며 과장되게 치켜세우시는 우리 아버지와 애썼다고 얘기하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그래도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처음이라 서툴어 실수도 많이 했다고 여유 있게 받아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입을 떠 넣었는데.. 나는 숟가락을 든 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내 표정이 그러한가 싶게 나와 닮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는 등이 쭈뼛 서는 서늘함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짜질 수 있는지 육수는 다시다를 한 통 모두 털어 넣은 듯 짰고, 당장 혀를 찬물에 담가 헹구어내고 싶을 정도였다. 짜증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게 왜???!!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한다고 나서긴 나서! 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녀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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