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영
이 책은 저자가 필리핀과 인연을 맺게된 계기와 필리핀에서 시작한 많은 사업에서 겪은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을 기록한 글로, 지난 2011년에 출간되었다.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저자를 2년전 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 대면한 저자로 부터 받은 첫 인상은 점잖은 사업가의 느낌이었다. 오래전에 출간된 이 책을 두어달 전에 우연히 알았고 바로 구입하여 읽었다. 어찌보면 성공한 사업가로 이 책을 통하여 얼마든지 자랑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것이 느껴지지 않고 뚜벅뚜벅 헤쳐나간 긴 사업의 여정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글로 옮긴 느낌이다. 외국땅 필리핀에 자리잡은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람에게 무언가 도움되게 하고 싶은 마음, 생각되로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전달되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그 사람이 남긴 글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하물며 그것이 책으로 나와 있다면 그 책을 읽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그 사람을 이해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마닐라 성공박사 안재영, 그가 말하는 필리핀 성공 노하우!!!'라고 씌어 있다. 언듯 제목과 함께 다가오는 이 책의 느낌은 필리핀에서 성공 가도를 달려 온 사업가의 빛나는 스토리를 엮은 내용 같다. 책 표지에 실린 저자의 인상은 사람 좋고 선한 이미지에 그다지 사업으로 고생한 이미지처럼 안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저자가 사업을 하면서 맞이한 쓰라린 경험과 비싼 수업료를 치루며 사업에서 배운 지혜가 많이 담겨 있다.
필리핀에서 나무젓가락 사업, 목재 사업, 바나나 사업, 가죽백 사업, 택시 사업, 자동차 수입 사업, 물류 센터 사업, 콘도미니엄(아파트) 사업, 자동차 주차설비 사업, 마지막으로 골프 클럽과 골프텔 사업까지 저자가 헤쳐 온 기나긴 사업의 여정은 몇가지 사업 분야에서만 거의 40년을 일해 온 나의 입장에서는 대단하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시도해 보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사업에 대한 자극과 도전하려는 마음 보다는 차라리 월급 받는 것이 더 낫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진심으로 필리핀에서 사업으로 성공해 보려는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사업의 화려함이 아니라 사업 이면에 숨어 있는 끝없는 심적 압박,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싼 수업료를 덜 치루는 법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굳이 필리핀이 아니라 사업하는 모든 경우에 엮여지는 인간 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돈으로 얽혀지며 치루는 갈등, 실망, 분함, 괘심함, 배신감, 억울함, 패배감, 절망감 같은 속쓰린 감정이 따라 온다.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창업하는 사업가는 이 책에서 간접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필리핀이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경제성장에 실패했고 우리에 비하여 많은 측면에서 뒤떨어진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필리핀에서 수십년을 살면서 차량 접촉사고로 길위에서 험악한 표정과 큰 소리로 운전자끼리 싸우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글에서 경제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화적인 부끄러움을 느낀다.
동남아시아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계 화교들 중에 필리핀에 살고 있는 화교 사회와 가까이 교류하면서 배운 그들의 자세는 저자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화교들의 인화와 검약 습관, 친선 모임에서 사소한 것들이라도 서로가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는 일사분란한 모습은 일반적인 한국인 교포 사회의 반대되는 모습과 너무나도 비교된다고 저자는 아타까워 한다.
내가 약 10년전쯤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필리핀에서 20여년 살아온 교포를 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식사중에 지나가는 말로 ‘필리핀 교포의 90%는 사기꾼이다.’라고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고 그 교포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있었겠지만 불신이 불신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나조차도 일부 일 수 있겠다는 당혹감이 들었던 기억이다.
7년전에 인도네시아 태양광 사업을 하면서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한국인 사업가도 몇번 만나면서 들었던 느낌은 이래서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게되는구나 였다. 자신의 사업 과정에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을 마치 한국인에게 되돌려 주려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저자의 글에는 의미있는 비유가 나온다. “마닐라 어느 상가에 일본 사람이 옷가게를 하는데 어느 날 한국 사람이 새로 옷가게를 내면 경계심을 갖는 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하는 옷가게가 하나 더 생기면 걱정을 안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두면 서로 싸우다가 둘다 망해서 문을 닫고 떠나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끼리 섞여사는 우리나라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조급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 일색이다. 가뜩이나 그러했는데 이제는 서로 얼굴 보고 눈을 마주치던 좁은 공간에서 조차 고개를 숙이고 자기 손안의 직사각형 세로 화면만 쳐다 본다. 분명히 교통, 의료, 주민 행정, 노동법 시스템은 예전에 비하여 잘 자리잡힌 것 같은데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오히려 꺼꾸로 간다. 여야 정치인들의 싸우는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매일 펼쳐지는 데자뷰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나라에서 남보다 뒤지지 말아야 하고, 기왕이면 일등으로 나서야 하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나와 내것만 보이고 함께 살아야 하는 남과 이웃은 눈에 안들어 오게끔 우리의 모습이 어느덧 각박하게 변해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남의 나라 땅에서 해외 교포로 살아가면서, 서로 보듬고 아끼며 살아가야 하는 남의 땅에서, 더 극명하게 투영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보다 뒤떨어있다고 알고 있는 필리핀을 속살 깊이 몸과 마음으로 치열하게 체험한 저자가 쓴 이 책에서 우리가 미쳐 모르고 있던 필리핀을 새롭게 배우는 맛이 있다.
이 책 제목의 일부인 ‘마닐라 자이언트’는 저자의 사업 역경을 잘 알면서 저자와 필리핀 부동산 사업을 함께 하기로 의기투합한 어느 사업가가 지어준 별명이다. 저자도 이 책에서 글로 남겼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더라면 결코 시작하지 않았을, 그러함에도 계속 벌이고 헤쳐 온, 끝내 살아 남은 저자의 머리에 씌워진 월계관 같은 멋진 별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