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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Feb 10. 2022

자기발견#4. 나는 누구의 삶을 사는가

 

  “무릇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세상도 생각해야 하고 국가도 생각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게다. 너 역시 그렇게 빈둥거리면서 지내는 게 좋을 리가 없잖느냐.(……)”, “서른이나 되어서 한량처럼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볼썽사납구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아버지에게 설교를 듣는 장면이다.    

  

만약 당신에게 다이스케 같은 자식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

만약 당신이 다이스케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아버지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언뜻 보면 이타적인 삶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남 보기에 ‘볼썽사납다’는 체면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이스케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일을 하면 자신의 무언가가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아버지의 가치관은 피상적이고 세속적으로 여겨진다. 우리 주변에는 다이스케 아버지 같은 어른들이 꽤나 많아 보인다. 가까이에는 나의 가족 안에도 이런 어른이 존재하고 있다. 아들이 조금만 다른 것에 눈을 돌리려 하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나오면 안 된다”는 설교에서부터 특히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손자와 자식을 걱정해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속 시원하게 자기 이야기를 내뱉지도 못한다. 어쩌다 내가 아들 편을 들어주다 보면 곧바로 되돌아오는 말은 “엄마가 돼가지고 아들 장가보낼 생각은 안 하고 너는 어째 그리 이기적이니?”라면서 화살이 나에게로 와서 장시간 훈계를 들어야만 한다. 정작 결혼 당사자인 아들의 입장이나 마음 상태는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자식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결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않는 부모는 부모역할을 다하지 않는 존재로 여기는 듯하다.     


  며칠 전에 우연히 보게 된 TV 프로그램 <애로 부부>에는 5명의 여자와 외도를 하는 남자 이야기가 나왔다. 그 남자는 유독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면서 아내에게 “몸무게 50kg이 넘으면 생활비를 깎겠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그 남자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외모 가꾸기를 하였는데 보는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실제로 내가 아는 지인 중에는 이미 결혼했음에도 친정엄마가 가슴성형수술을 권하고 있다. 그래야 남편이 외도를 안 한다는 이유에서다. 남자가 외도를 하는 건 여자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라고 말하는 엄마, 자식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엄마의 존재와 역할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광수 교수는 내가 20대 시절, 일로써 그의 연구실에서 직접 뵌 적이 있다. ‘야(野)해져야 행복해진다’라며 야한 정신을 설파했던 그가 말하는 야함은 사전에 나오는 천박함의 의미보다는 자신의 본성에 솔직하고 이중성이 없는 야(野)인 정신을 의미한다. 즉 ‘과거보다는 현재에’,  ‘도덕보다는 본능에’,  ‘절제보다는 쾌락에’,  ‘전체보다는 개인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가치를 더 매기는 정신이다.      


  인간은 잠재의식(이드=쾌락욕구)과 표면의식(초자아=양심)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잠재의식인 이드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드는 인생의 만족감의 원천이며 정신에너지의 샘으로써, 이드가 과도하게 억압당하면 기쁨이 없고,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필요에 따라서 공격할 수도 있고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이드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 반면, 표면의식인 초자아는 검열적 자아로 자신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도덕적 행동을 요구하며 죄의식을 심어준다. 마치 훈계와 비난을 일삼는 부모가 마음속에 내재화되어 있는 셈이다. 가혹한 초자아는 인간을 자학적으로 만들어 모든 면에서 자신의 부족을 느끼게 하고 자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마치 ‘행복해지는 건 죄악’이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물론 이드와 초자아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기 위해 자아의 중재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열정과 삶의 에너지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의 몸은 활기에 넘치고 살맛 나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은 이전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준 ‘나만의 스피치 대본 만들기’ 중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생 질문의 예시들을 주고 그 속에서 주제를 하나 정한 후, 자신의 스피치 대본을 5단계 프로세스에 맞춰서 작성해보는 과제였다.      

                 

1. 대상과 목적 분석

- 대상 : ‘평범함’을 거부하는 나를 걱정스러워하시는 부모님

- 목적 : 부모님께 명확히 나의 가치관을 전달드리고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 의지를 다지기 위함


2. 주제 선정

주제 : 세상은 나에게 ‘평범함’을 강요하고 있다.


3. 질문 나열

- ‘평범함’을 강요받는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 처음 이를 인지하고 느낀 감정은?

-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처와 그 이유는?

- 이 강요로부터 앞으로의 나는? 


4. 목차 설계

- 서론 : 나에게 평범함을 강요하는 세상

- 본론 : 그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가치관 및 대처

- 결론 : 앞으로의 계획


5. 내용 작성

아빠, 엄마. 제가 세상으로부터 강요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뭔지 아세요? ‘평범함’이에요. 처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세상 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본인의 삶에 대해 불만족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살아간대요. 남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혹은, 평범하게 살면 적어도 안정성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에요.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거든요. 제 인생을 타인의 인생과 비교하며, 다름에 불안감을 느끼고 뒤처짐에 조급함을 느끼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온전히 나의 가치, 나의 능력, 나의 행복에 집중하며 ‘그저 그런’, ‘10년 후가 그려지는’ 인생이 아닌 나라서 살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도 꽤 들어왔어요. 그리고 아빠, 엄마도 이런 이유에서 저를 걱정하신다는 거 잘 알아요. 현실을 살라는 말을 몇 번 듣다 보니 저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지, 뭐. 이게 내 현실인데.’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어요. 제가 저에게 평범함을 강요하게 된 거죠. 


 이를 인지한 지금의 저는 제 가치를 높이고, 그를 입증할 만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경험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남들이 다 가는, 그래서 그것이 옳은 것이라 여겨지는 길이 아닌, 내가 개척해 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요. 저는 이제 노력/의지/집념과 같은 통제 가능한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갖추어놓고, 기회나 운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을 기다려보려 해요. 그게 High risk에 대한 결과로, Big Loss보다 Big return에 가까운 결과를 얻어내는 길이니까요. 열심히 노력할 테니 옆에서 믿고,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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