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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Aug 05. 2020

진로#2.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대학생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우리들이 하는 일의 상당수는 실제 자신이 원했던 것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내면화하여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기준인 것처럼 믿어왔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한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대학생     

  2014년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전공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 72.7%가 ‘전공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59.3%는 ‘기회가 된다면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2018년에는 구직 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5794명을 대상으로 전공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졸업을 앞두고 상담실을 내방한 4학년 학생은 ‘전공 아닌 분야로 진로를 희망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도대체 왜 대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무엇이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 것일까?     


  아마도 전공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반영해서 결정하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변 어른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학과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사유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어른들이 추천하는 학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심지어 마치 자신도 그 학과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경우도 있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이 어디냐에 따라 그 정신과 생각의 틀이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 문화는 ‘너와 나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일정한 틀을 만들고 그 틀의 형태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너의 생각을 말해 봐”,  “너의 생각은 어때?”라는 과정이 빠져있다. 물론 이러한 바탕에는 한국이 겪어온 식민지 경험, 해방 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독재정권으로 인한 다양성과 자유를 엄격히 제한한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렀으며, 이런 폐쇄성은 거의 모든 일상을 지배하였다.       

  『감시와 처벌』의 저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간의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며 변화하는지를 탐구하였다. 그는『주체의 해석학』에서 “내 안에 길들여지지 않은 속성이 있다면 그것을 장악하고 강화하여 길들여진 다른 측면을 압도하게 하라. 그러면 나는 훈육된 것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찾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개인의 길들여지지 않은 측면을 끌어내 본래의 나와 일치시키는 것은 이 시대의 개인에게 주어진 과업이며, 우리가 시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길들여진 욕망부터 비판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새롭게 물어야 한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길들여진 탓에 약자 스스로가 약자이기를 선택하는 자발적 복종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푸코는 자발적 복종의 개념을 “타인(외부)을 지배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내부)을 지배해야 한다. 자기 의지를 관철시킬 힘이 부족하면 상대(사회)의 의지에 맞춰 나를 통제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음악학과에 들어가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행정학과로 들어간 것, 내 전공과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연봉과 조건이 더 좋아서 지원하게 된 직업은 자발적 복종의 행동 양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만 해왔던 학생들은 자기 내부의 길들여지지 않은 속성을 발견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관심사조차 발견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라는 학생이 있다면 이제라도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보아야 한다. 주변이나 사회적 시선으로서의 관심사가 아닌 오롯이 내 마음의 시선이 향하는 관심사를 발견해야 한다.      


  나의 관심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첫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이 재미있고 즐거웠는지를 떠올려 보자. 유난히 관심이 가는 과목이 있었거나 기다려지는 수업이 있었는지, 설레며 더 배우고 싶은 관심 주제가 있었는지, 서점에 가면 어떤 분야의 책들을 주로 보게 되는지,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자주 들어가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집중이 잘 되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유롭게 적어보는 것이다. 관심사를 찾을 때 주의할 점은, 단지 시간이 잘 가거나 단순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보다는 관심의 기간이 길고 구체적인 활동이 포함되는 일 위주로 찾아보자. 잠시 동안만 즐거운 일은 단순 오락거리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돈이 되는지 앞으로 유망한 직업이 될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자. 

  둘째, 관심사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반응해 보자. 관심사에 대한 반응은 흥미가 되고 그러한 흥미는 재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관심과 흥미가 있는 일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레 실력으로 향상되어 직업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돈 버는 일과 무관한 것이면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없는 것들이 지닌 이 쓸모없음이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내가 바로 이 쓸모없음으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 중 하나다. 관심 가는 주제의 책 읽기를 시작한 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다. 즉, 부자가 되기 위해서나 명성을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책 읽기는 내 일상의 탈출구이자 내 존재와 마주하는 숨구멍의 공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틈틈이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졌고, 그 당시(2002년 초로 기억됨) 나의 롤모델이었던 구본형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곳에 오는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글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7-8개월 정도 지나서 <이숙영 자기계발 클리닉>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이 온라인 공간에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첫 책 『스스로를 결정하라』를 출간하게 된다. 그때가 2002년 겨울이었다. 첫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다양한 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여러 기업에서 글 청탁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가진 1인 기업가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2004년 3월이니, 벌써 16년 넘게 대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에서 힘을 얻는다. 물론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나의 관심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알게 된 성과다. 나는 현재 대학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관련 수업을 강의하고 있으며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 스스로에게 ‘글쓰는 상담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였는데, 앞으로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쓸모없는 것들에는 억압이 없다. 사람은 쓸모가 없더라도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에 매달리는 존재이며 인간만이 그런 쓸모없음의 유용함을 찾아낸다고 한다. 쓸모 있는 것들은 쓸모를 주면서 항상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데 그중 가장 큰 대가가 욕망의 억압일 것이다. 욕망의 억압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자기의 욕망이나 생각과 감정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나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방식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남과 다른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너는 해야 한다’는 의무나 역할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했다. 젊었을 때는 마음의 원리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그런 내가 너무 이상하고 흔쾌히 수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게다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엄마를 대할 때면 죄책감이 올라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책 읽기였다. 


  우리는 의외로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때로는 내 기분이 뭔지조차 잘 모를 때도 있다. 우리는 많은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고 각자가 가진 문제 또한 다양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을 책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때는 저자가 내 마음속을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내 마음을 똑같이 표현해주는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면 나와의 소통이 가능해지고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어 그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가능해진다. 이는 결국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책은 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데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의 이 불편함은 종속적인 노예가 아니라 주체적인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저항의 몸부림이었음을. 또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함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각자가 원하는 인생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너는 해야 한다’는 의무에 맞서서 ‘나는 원한다’라는 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한 개인이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주체 정신의 권리는 축하해주어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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