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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Dec 21. 2020

자기발견#1.필름 매트릭스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자

 

  “무릇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세상도 생각해야 하고 국가도 생각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게다. 너 역시 그렇게 빈둥거리면서 지내는 게 좋을 리가 없잖느냐.(……)”, “서른이나 되어서 한량처럼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볼썽사납구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아버지에게 설교를 듣는 장면이다.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아버지의 말은 언뜻 보면 이타적인 삶을 장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남 보기에 ‘볼썽사납다’는 체면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주변에는 다이스케의 아버지 같은 어른들이 꽤나 많아 보인다. 딸에게 결혼을 권유하는 엄마는 딸에게 살이 쪄도 안 되고, 너무 빠져도 안 된다고 말한다. 헤어스타일과 옷에 대한 간섭뿐 아니라 심지어 성형수술을 권장하는 엄마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중에는 친정엄마가 딸에게 가슴성형 수술을 돈까지 내어주면서 권유한다. 그 이유로는 그래야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바람을 안 피운다나. 기가 찰 노릇이다. 모두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가족이나 친구, 주변 지인들에게 내 딸이 어떻게 비칠지에 더 관심이 많다. 특히 비혼을 내세우며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에게 엄마들은 “네가 뭐가 부족해 결혼을 안 하느냐”면서 마치 결혼은 필수인 것처럼 강요한다. 사실 엄마의 속내를 살펴보면, 딸이 혼자 외롭게 살까 봐 걱정해서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이 잘 못 키운 거 같아서, 엄마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남들에게 체면이 안 서고 그들로부터의 오해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찾아서 보는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기득권의 만행과 가진 자들의 잔혹한 민낯을 까발리고 있다. 특히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부모들의 욕망이 자식 세대까지 전수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JTBC의 <SKY 캐슬>역시 부모들의 속내를 샅샅이 잘 보여주었던 드라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 인물들에 대한 동일시와 투사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작업은 필자가 학기 중에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이기도 하다. 일명 ‘필름 매트릭스’ 과제이다. 필자가 심영섭 아트테라피 영화치료를 공부할 때 많이 도움받았던 내용으로, 투사와 동일시의 이해는 우리 자신을 더욱더 정서적 치유와 내적인 자유로 안내한다. 결국 부정적 투사와 부정적 동일시가 되는 우리 내면의 자아는 칼 융에 의하면 우리의 그림자(shadow) 부분이다. 이런 그림자의 특징들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은 우리가 더 심미적이고 전인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내면의 감춰진 잠재력에 다가서는 것을 도와준다.


  이번 2020년 2학기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준 필름 매트릭스 영화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필름 매트릭스는 영화 속 인물을 동일시와 투사 정도에 따라 평가하고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필름 매트릭스는 네 개 분면의 각 영역에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선택하여 적는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적은 후에는 그 인물을 고른 이유도 함께 적는다. 1 사분면에는 좋기도 하고 이해도 되는 인물을 적는다. 마치 자신이 행동하고 느끼고 세계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인물을 적는 것이다. 만약 여러 인물이 생각나면 가장 이해가 되고 좋아하는 인물을 고른다. 2 사분면에는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는 되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을 적는다. 여러 인물이 생각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람을 고른다. 3 사분면에는 이해는 되지 않지만 혹은 자기와는 맞지 않지만 인물의 선천적 특질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때문에 좋아하거나 존경하게 된 인물을 적는다. 여러 인물이 생각나면 가장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을 선택한다. 4  사분면에는 자신이 거의 이해할 수도 없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인물을 적는다. 보통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인물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거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그에게 한방 먹이고 싶은 인물일 수도 있다. 여러 인물이 생각나면 가장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을 선택한다. 



 한 학생이 제시한 예를 들어보자. 

좋기도 하고 이해가 되는 인물은 영배다(1 사분면). 그 이유는 자신의 큰 비밀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두려워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또한 마지막에 자신의 남자 친구가 피해를 볼까 봐 저녁식사에 데려오지 않았던 것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이해는 되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은 태수다(2 사분면). 그 이유는 너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강하다. 나쁜 사람이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아내에게 하는 태도들을 봐서는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보여지지 않았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인물의 선천적 특질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때문에 좋아하는 인물은 수현이다(3 사분면). 그 이유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는 수현의 삶이 이해는 안 되지만 최대한 가정을 위해 헌신한 점이 대단해 보였다. 거의 이해할 수도 없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인물은 예진이다(4 사분면). 그 이유는 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벽하길 원하면서 정작 본인은 남편의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는 아주 이중적인 인물이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또 다른 학생의 예시를 들어보자. 

좋기도 하고 이해가 되는 인물은 석호다(1 사분면). 그 이유는 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임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이며 사람 간의 갈등을 중재해주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해는 되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은 수현이다(2 사분면). 그 이유는 감수성이 풍부하며 자신의 맡은 일을 착실하게 하지만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고 소심하여 가장 소중한 자신이라는 존재를 망각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부분에서 답답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인물의 선천적 특질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때문에 좋아하는 인물은 예진이다(3 사분면). 그 이유는 소중한 사람을 두고 남편의 친구와 불건전한 관계를 맺는 것은 나와 다르지만 선천적 특질이 나와 비슷하다. 완벽주의자이며 이성적인 성격을 겉으로 보여주지만 내면은 매우 여리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거의 이해할 수도 없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인물은 준모다(4 사분면). 그 이유는 겉과 속이 매우 다른 인물이며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편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허황된 목표만을 가진 인물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을 하고 있는 요즘,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자기를 분석해보는 자기발견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다음번 글에서는 필름 매트릭스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내면의 특성들을 작성하는 '셀프 매트릭스'를 소개하겠다. 이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한 자기발견과 연관이 있다. 필름 매트릭스가 자신이 지각한 인물에 대한 어떤 특성이었다면 셀프 매트릭스는 그것을 토대로 내면에 투사된 자신의 여러 가지 자아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셀프 매트릭스 작업을 통해 영화 속 인물이 상기시켜 주는 자신 안의 여러 면을 확인하였다면 그 이후에는 내면의 여러 특성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잠재력을 발휘할지 생각해보는 '성장 매트릭스'를 작성하게 된다. 즉, 학생들은 이러한 3가지 매트릭스를 모두 작성하면서 알게 된 자신의 또다른 내면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을 파악해 보는 것은 진짜 공부의 시작이며 이는 공들여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우리는 자기발견을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알아내는 수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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