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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Jan 29. 2021

자기발견#2. 셀프 매트릭스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불안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이 방어기제는 사람들의 걱정이나 불안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자기를 속이는 정신 과정이다. 방어기제의 종류로는 억압, 퇴행, 전위, 승화, 반동형성, 투사, 동일시, 합리화 등이 있으며, 이 중 필름 매트릭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방어기제는 동일시와 투사이다.


  먼저, 동일시 identification는 위협이나 불안감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의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동을 말한다. 타인을 자신의 대신이라고 보는 경우로, 이를테면 영화를 볼 때 자신을 마치 영화 속의 인물처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인식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어 심리적인 해방감을 누리게 되는 효과가 있다. 다음으로, 투사 projection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 태도를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귀인하는 것으로, 다양한 금지된 생각과 충돌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탓이라 여기면서 불안을 막는 방어기제이다. 투사에는 긍정적 투사와 부정적 투사가 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욕망이 ‘그녀’에게 투사되면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지각하는 것이 긍정적 투사다. 이럴 경우에 그 사람을 닮고 싶은 긍정적 동일시가 일어나게 된다. 반대로 ‘내가 그녀를 싫어한다’는 욕망이 ‘그녀’에게 투사되면 ‘그녀가 나를 싫어한다’고 지각하는 것이 부정적 투사다. 이럴 경우에 그녀를 배척하고 그녀와 내가 매우 다른 사람이라고 지각하는 부정적 동일시가 일어나게 된다.


영화를 볼 때 우리가 어떤 캐릭터나 그 행동을 아주 싫어한다면 자신의 아직 완전히 의식하지 못한 단점을 그들에게 투사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의식적으로 알아가는 것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영혼의 부분에 다가가도록 해 준다. 캐릭터에 대한 투사는 일상에서 쓰이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와는 달리 좀 더 의식화된 상태에서 우리의 투사 방어기제가 드러나도록 도와준다. 특정 캐릭터에게 긍정적인 투사를 할 경우, 우리는 흔히 그 캐릭터에게 찬탄하거나 이상화하면서 우리의 인정되지 않거나 잘 모르고 있는 장점을 캐릭터에게 투사한다. 반면에 유달리 싫어하고 비호감을 보이는 캐릭터의 경우, 그 캐릭터나 그들의 행동에서 보이는 부정적 특징은 자신의 억압된 ‘그림자 shadow’ 일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속 어떤 캐릭터에게 호감 혹은 비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내면에 감추어진 장점과 단점을 인식하고 그 특성을 수용하거나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영섭의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칼 융에 의하면 부정적 투사와 부정적 동일시가 되는 내면의 자아가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한마디로 심리의 어두운 측면을 말한다.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며 우리가 멸시하는 부분이다. 즉,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거나 억압해온 내면이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온전하게 태어나지만 우리가 타고난 자연스러운 특질 중 어떤 부분은 살아 있도록 허용하고 또 어떤 부분은 계승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문명이다. 즉 문명화 과정을 통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온전한 특질 중에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수용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일어난다. 여기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가 거부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특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런 특질을 오랜 시간 숨겨놓으면 이 어두운 특질이 자체의 생명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자의 삶이다. 만약 그림자가 자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집적할 경우에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폭발하거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로버트 존슨의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셀프 매트릭스를 만들어 보기 위해 동일시와 투사, 그림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셀프 매트릭스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필름 매트릭스를 작성해야 하는데 다룰 영화와 내용에 대해서는 이전에 올려놓은 <자기발견#1. 필름 매트릭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제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본 후 셀프 매트릭스를 작성해 보자. 셀프 매트릭스는 필름 매트릭스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내면의 특성들을 작성하는 사분면들을 말한다. 이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한 자기발견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내면에 투사된 자신의 여러 가지 자아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셀프 매트릭스 1 사분면은 지각된 장점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어떤 특성에 관한 것이다. 흔히 평소에도 잘 알고 있거나 잘 이해하고 있는 자신의 장점을 적는다. 필름 매트릭스 1 사분면에 적은 인물 안에서 본 장점을 찾아보면 된다. 2 사분면은 지각된 단점으로 흔히 잘 이해하고는 있지만 싫어하는 내면의 단점에 관한 것을 적는다. 단, 여기서의 단점은 실제 단점이 아니라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알고 있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단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필름 매트릭스 2 사분면에서 동일시했던 인물 안에서 본 단점을 찾아보면 된다. 또는 선의의 친구가 해준 피드백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3 사분면은 투사된 장점으로 영화 속 인물에게는 경탄하면서도 자신 안에서는 쉽게 지각하지 못하는 장점을 적는다. 영화 속 인물에게 감탄했던 장점을 자신에게서도 실제로 경험했던 예외적인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4 사분면은 투사된 단점으로 자신이 가장 이해하기도 어렵고 싫어하는 어떤 내면의 속성을 적는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도 않고 싫어하는 캐릭터에게서 보이는 그런 특징이 있다고 내게 말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비록 예외적인 상황에서 단 한 번 겪었더라도 나의 단점이 있다면 적어보라. 이 부분은 흔히 그림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당신은 이 그림자가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용서하거나 용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도 분노, 우울, 슬픔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이 과부하되어 나타나거나, 아예 어떤 감정이나 기억도 느끼거나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심한 억압이 드러날 수도 있다. 


  셀프 매트릭스의 작성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셀프 매트릭스 각 사분면의 (    )에 필름 매트릭스에서 동일시했던 인물을 적어놓았다(셀프 매트릭스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를 본 후 필름 매트릭스를 작성해야 한다). 셀프 매트릭스 1 사분면은(세경) 자신의 꿈을 좋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2 사분면은(예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주변 사람을 조종하여 유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 상황과 사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3 사분면은(석호)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경청해주고 공감해준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이해한다. 4 사분면은(준모) 노력은 하지 않고 허황된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분노한다. 


  매 학기 학생들은 셀프 매트릭스를 작성하면서 특히 4 사분면(투사된 단점)을 놀라워한다. 자신에게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 안에 그러한 욕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매트릭스 작업을 하고 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그림자는 무엇인가?  

나의 그림자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칼 구스타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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