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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ul 11. 2024

하루에 두 번 남편 엉덩이를

    

소파에 모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눈을 질끈 감고 끙끙 앓았다. 남편은 아래턱을 떨며 간신배처럼 ‘아야야야~’ 소리를 냈다. 

     

“나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

“나 트렁크 팬티 좀 사다 줄 수 있을까.”

“내 옷은 빨래를 따로 해야 할 것 같아.”

“저기, 나 이제 약 먹어야 하는데.” 

수발이 시작되었다.      


목요일 아침, 남편은 엉덩이에서 뭔가 만져진다고 출근 전 항문외과 진료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얼마 있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항문 농양이래. 의사 선생님이 더 커지기 전에 오늘 바로 수술을 받으라네.”


남편은 회사에 알리고 당일 급작스럽게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인 줄 알았는데 농양이 생각보다 커서 남편은 이틀이나 입원을 하게 됐다.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하필이면 내가 아침부터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 있어서 남편 혼자 퇴원을 하게 됐다. 택시가 안 잡혀서 버스를 타고 왔단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어기적 어기적 걸었다. 얼굴이 핼쑥했다.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서 가져다준 죽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한다.


주말 내내 앓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평소 엄살이 좀 있는 편이다. 아프긴 하겠지, 근데 엉덩이 짼 게 저 정도로 아픈가. 서운해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엄살 한 스푼이 보태졌으리라 생각했다. 집안일이 다 내 차지가 됐다. 귀찮았지만 남편은 결혼 생활 동안 내게 쌓아놓은 마일리지가 많았기 때문에 은혜 갚는 까치 심정으로 감내했다.

      

“미안한데 나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어?” 


남편의 호출에 안방으로 갔다. 퉁실한 엉덩이를 까고 침대에 엎드려 있다.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거즈를 교체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남편의 두 쪽 엉덩이를 손으로 잡고 벌렸다. 안쪽으로 상처가 보였다. 생각보다 상처가 컸다. 낭종이라 해서 손톱 정도 크기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5센티 정도 크기 삼각형 모양으로 도려내진 생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빨간약 포비든이 적셔진 면봉을 상처에 가져다 대니, 뜨거운 물에 입수한 산 낙지처럼 엉덩이를 꼬물대며 들썩인다. 흐흡~ 남편은 제 손가락을 물었다. 


“너무 꼼꼼히 하는 거 아냐? 대충 해도 괜찮아~” 

완곡하게 그만하라고 한다.      


직접 보니깐 알겠다. 진짜 아프겠다. 남편이 이해가 됐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선 가까이서 보는 게 필요하다. 안 봤으면 마냥 엄살인 줄 알았을 거다. 엄살 피우지 말라 했으면 남편은 얼마나 서운했을까. 보길 잘했다 싶었다.      


보이든, 잘 보이지 않든,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남의 상처를 두고 섣불리 엄살이라 치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이다.      


남편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출근을 했다. 내가 출근 전, 퇴근 후 아침저녁으로 매일 엉덩이를 붙잡고 소독을 해준다. 저 헤집어진 똥꼬를 하고선 종일 의자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딱하다. 도너스 방석도 주문해 줬다. 아침 약을 챙겨 먹으라고 평생 차려주지 않았던 아침을 차려줬다. 번거롭다고 말렸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고 점심 도시락을 싸줬다.      


남편은 나를 ‘똥꼬 히어로’라고 부른다. 별거 아닌 걸로 그에게 난 히어로가 됐다. 어제는 퇴근길에 아픈 똥꼬를 이끌고 기미에 좋다는 마스크팩 몇 박스와 내가 좋아하는 맥도널드 치즈버거도 포장해 왔다. 그의 아픔을 살피니 그의 마음이 내게 머물렀다. 










p.s. 여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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