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를 보며 든 생각
야구광인 남편 덕에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최강야구는 은퇴한 야구선수나 프로 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몬스터즈’라는 팀으로 묶어 야구경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운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떤 스포츠에도 관심을 둔 적이 없다. 한일전이나 월드컵, 김연아 선수의 경기 등 시청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경기들만 시청할 따름이다. 지금껏 특히 긴 시간 경기가 이어지는 스포츠 종목, 딱 찍어 야구를 내 의지로 찾아보는 일 따윈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야구경기를 틀어놓는 통에 하루도 빠짐없이 강제 시청, 주말에는 남편이 사회인 야구 경기에서 펼친 활약상을 들으며 그의 야구복을 세탁하고, 자면서도 야구공을 쥐고 자는 남편으로 인해 나는 더더욱 야구를 지겨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야구와 가까워지고 말았다. 야구경기의 룰을 숙지하게 됨은 물론, 남편이 응원하는 SSG의 경기를 같이 보다 박성한 선수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최강야구 프로그램은 나의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었다.
최강야구는 야구경기이지만 자를 건 과감히 자르고 늘릴 건 늘린 편집력 때문에 따분할 틈이 없다. 또한 남편을 통해서 저 선수는 왜 레전드로 불렸고,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은퇴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스토리를 듣고, 화면에서 선수뿐 아니라 선수들의 가족의 모습도 같이 보면 어쩐지 그 선수의 인생이 짠하게 다가와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 중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사실 선수들의 플레이가 아닌 화면에 잡힌 한 선수의 어머니였다.
내내 선발투수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신재영 선수가 선발로 그라운드 위에 섰다. 1회 초. 신재영 선수가 공을 던지고 카메라는 관중석에 앉아있는 그의 어머니를 비췄다. 아직 1회일 뿐인데, 어머니는 9회 말 상대 팀의 공격을 꼭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처럼 아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공을 던질 때마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볼 뿐이었다. 글썽이는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간절함은, 같은 팀의 선수들과 감독, 어쩌면 공을 던지는 신재영 선수 본인이 가지는 간절함보다 더 커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야구복을 입고 처음 운동장에 섰던 때부터, 야구공을 쥔 아들의 실망과 기쁨이 파랑처럼 부단히도 오르내리던 모든 순간 함께 했을 것이다. 버리려야 버려지지 않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마운드 위에 올랐을 것이다. 자신이 한 척의 배에 달린 돛이 되어서, 배가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길 바라며 물심양면으로 도왔을 것이다.
선수의 뒤에서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모든 가족들이, 비로소 보인다.
조선의 4번 타자라 불리는 이대호 선수가 빨간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등장했다.
추석 연휴에 그가 한 강연에 출현한 걸 봤다. 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가한 후 할머니 손에 키워진 이대호 선수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해보자고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자의 꿈을 응원했고 된장 바른 콩잎을 노점에서 팔고 폐물을 전당포에 맡겨가며 뒷바라지를 했다. 고만고만한 형편이었던 삼촌 고모들도 힘을 보내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성공해도 같이 기뻐해 줄 사람도, 호강시켜 줄 사람도 없어지자 야구에 대한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으켰던 것도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고생하며 손자를 키웠을 때 네가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겠냐”는 코치님의 말에 그는 다시 야구에 전념했다. 그리고 이후로는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 준 한 사람, 헌신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준 지금의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을 냈다. 이대호선수는 그들이 있어 자신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정석적인 말을 했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말이 아닌 진짜라는 걸, 정말 그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내 작은 오두막집을 밝혀주는 등불을 떠올려본다. 날 위해 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가족. 내 행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제 것 마냥 같이 고민해 주는 이들. 의기소침해서 자꾸 땅굴을 파내려 갈 때마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내 편. 이들이 내 삶의 이유이고 원인이었다. 애틋한 눈으로 날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에 발 딛고 살 수 있고 설 수 있다. 우주인처럼 둥둥 떠있는 발을 그만 땅에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글썽이며 바라볼 때, 내 삶보다 그의 삶이 더 짠하게 다가올 때, 우리도 그 사람의 등불이 된다.
나는 왜 태어나서 살고 있을까? 사춘기시절부터 무수히 던져 왔던 질문이다. 해답 중 하나를 찾았다.
널 응원하기 위해서, 네 행복을 돕기 위해서, 네가 힘든 건 네 탓만이 아니라고 말해주려고, 너의 행복과 슬픔을 글썽이며 같이 바라보려고,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너보다 더 바래주기 위해서, 산다.
나를 부단히 발전시켜 가는 삶도 가치 있지만. 너를 위해 살아가는 내 삶도 분명 빛이 나는 것이다.
*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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