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Jul 23. 2023

퇴사해도 날 사랑할 수 있을까.

연애 때는 안 그랬다.     

 

“빤스가 바지 안으로 못 들어가고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사각 빤스라서 그래.”     


아버지가 입던 반바지, 그 고무줄 위로 팬티가 탈출했다. 흰색 크고 축져지는 소재라 참으로 편안하오만 흐레한 사내의 속옷 같다. 주섬주섬 윗도리를 내렸다. 아침에 반짝 뽀샤시한 남편은 출근의 괴로움을 엉덩이춤으로 승화시키며 현관문을 열었다. 나도 질세라 삐죽 튀어나온 팬티와 함께 엉덩이춤으로 화답했다.


5년간의 연애 동안 단 한 번도 남편 앞에서 내 뺑뺑이 안경을 쓴 적이 없었다. 눈이 아플 때는 한쪽 렌즈만 끼더라도, 그래서 멀미가 나더라도 참았다. 예쁜 척, 쿨한 척, 당당한 척했다. 직장에서 힘든 얘기도 길게 하지 않았다.      


안경을 벗어도 미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안경을 쓰면 몇 배는 못생겨진다.


약속된 시간에 만나고 헤어지는 연애 시절에는 선별한 모습만 보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삶이 된 우리는. 피쉭 속절없이 나오는 방귀처럼 새어 나오는 본모습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원초적인 외모만이 아니라 미루고 미루다 벼락치기로 우다다 해내는 생활습관, 작고 찌질한 마음 등 안팎으로 내추럴한 내가 나왔다.     


2년 전, 퇴근을 하고 식탁에 앉았다. 남편도 집에 돌아왔다. 조용한 저녁이었으나 내 마음은 몹시도 소란스러웠다. 말이 안 나왔다. 정리된 말로 내 마음을 뱉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유독 이번 학기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 예의는 개나 줘버린 학생들과의 기싸움, 푸닥거리를 하는 게 신물이 났다. 10년 넘게 교직에 있어도 여전했다. 힘든 학급의 수업을 다녀오면 맥이 머리에서 뛰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뭔가 일이 터지면 집에 돌아와서도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너를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분하고 화가 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교무실 다른 동료교사들은 잠잠했다. 이 일이 나처럼 힘든 사람은 없어 보였다. 마음이 비구름처럼 낮게 깔렸다. 왜 나만 이렇게 어렵지. 나만 왜. 나에 대한 미움이 드글드글 끓었다. 학생들에게 말도 행동도 더 단호하게 해야 했나. 만만해 보인 내가, 무른 내가 미웠다.


그날 저녁은 그랬다. 돌아볼새 없이 여기저기 던져 쌓였던 생각과 감정들이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쏟아져 내린 날.


내일 아침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무너진 마음 위로 후두둑 눈물을 떨어졌다. 옴팡 울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조마조마했다. 자신감을 잃고 무력한 내 모습. 남편은 내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나약한 내 밑바닥을 그대로 내보여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초라한 나를 여과 없이 보이는 건, 안경 쓴 민낯을 남편에게 처음 보인 순간보다 더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당신은 이런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날 사랑할 수 있을까.      


려웠다. 나는 약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게 무엇보다 두려웠다. 쓸모 있는 존재여야만,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내심 생각해 왔다. 무능한 존재가 되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것 같은 생각,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거리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남편 앞에서도 외모가 못나 보이는 것보다 무능하고 약한 존재로 인식되는 게 더 싫었다. 그러면 날 향한 사랑이 떠날 것만 같았다.    

  

이상스럽다. 난 왜 능력이란 조건을 갖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내 가정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아버지를 떠난 어머니를 보고 나도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난 것인지. 사랑에 조건을 달게 된 건, 부모님의 불화 속에서 자라나 나 자신을 그대로 품을 수 없는 게 근본적인 원인일까. 자신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곁에 서 있던 남편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흰색 메리야스를 입고 찹쌀떡 같은 배를 내밀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희한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지금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놀라지도 않고, 날 한심하거나 못나게 보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섣부른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 고충을 다 이해할 순 없었다. 다만 직장인으로서 어려움과 동질감을 느꼈고, 지금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남편은 너무 힘들다면 물러서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날 받아줄 거란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웃는 모습이 아니라 괴로운 나를 남편 앞에서 보인 후에야 남편에 대해 안도하였다. 당신은 나의 무너진 마음을 보이고 말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어느 밤, “여보 내가 못나고 무능해도 사랑할 수 있어?” 물었다. 남편은 능력 있는 사람이 좋은 건 직장에서고. 그 기준으로 날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 역시 능력을 조건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몸집에 맞지 않은 작은 귀가 귀여워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쪽 모으는 빙구 표정이 귀여워서, 귀갓길에 내가 좋아하는 맛밤을 사가지고 오는 마음이 따뜻해서, 초록색 옷을 입은 날 대파나 시금치가 아닌 새싹이라 불러줘서, 소파에 앉아 같이 TV를 보는 시간이 즐거워서, 먹고 싶은 닭볶음탕을 꾹 참고 내가 올 때까지 남겨두는 마음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랬다. 인생이 뜻대로 안 풀려도 살아가려고 애써온 모습이 짠해서, 가족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미안하고 불쌍하고 고마워서 사랑한다. 가족이 뭐 잘난 구석이 있어서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일을 잘할 때만 사랑하는건 아니었다. 내가 밥을 잘 챙겨 먹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자주 생각해 주는 존재여서 사랑한다. 쿨럭이는 인생의 파고 위에 함께 있어주고 어느 하루에  따뜻한 추억을 남겨준 그들을 사랑한다.


가족들도 그래서 날 사랑할 것이다.


나도 날, 그런 이유로 사랑해 보기로 했다. 가족들이 날 사랑하는 이유. 

내 사소한 특징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호의.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 남들에게 찌질 해 보일지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날 사랑할 구석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나하나 찾다 보면 내가 직장을 잃어도, 일할 능력이 없어도, 무언갈 잘해내지 못해도 나는 날 사랑할 수 있을것 같다. 





이전 09화 한 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