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Jun 24. 2023

엄마가 내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어렸을 땐 그게 상처인 줄도 몰랐다. 어떤 일들은 그렇다.  

         

우리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자주 치열하게 싸우고 서로를 미워했다.   

   

객관적인 원인 제공은 아버지였다. 딸 셋을 두고 오도 가도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마른 나뭇잎처럼 버석거리던 어머니의 눈은 아무것도 담지 못한 채 텅 비어갔다. 불행했던 어머니는 자식에게 예전처럼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다.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가슴과 내어줄 웃음이 더는 없었다.   

        

이를 헤아리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저녁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 옆에서 어린 나는 뭔가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날 좀 봐달라고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사랑을 구했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무슨 얘기 때문이었는지 어머니가 갑자기 설거지하던 컵의 물을 내 얼굴에 끼얹었다. 바쁘게 조잘이던 입은 차가운 물세례에 푸쉬쉬 작동을 멈췄다. 나는 놀라 울지도 못했다.      

   

이 장면이 이토록 오래 생채기로 남을지 몰랐다.  기민한 나의 뇌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이를 장기기억으로 남겨두었다. 해마가 장기기억으로 남겨두기로 판단한 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지키고 싶은 의도였을 것이다. 장기기억에 차곡 쌓여 원치 않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수십 년간 상영을 했다. 막을 내린 지 10년, 20년이 지나도 차가운 물의 감각, 그보다 더 시리게 다가왔던 어머니의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평생토록 날 시리게 했다.


나에게 왜 물을 끼얹었는지 묻지 못했다. 보듬지 못한 상처가 가슴에 담긴 채 시간은 흘렀다. 한참이나 지난 일이라 언제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나는 커가면서 혼자 이해했다. 엄마가 고통스러워서 그랬을 거라고.           


상담교육을 받으며 내면아이 치유 상담을 할 때 나는 이 장면을 그렸다. 디테일하게 그때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고, 상담선생님 앞에서 내 마음을 애써 설명했다. 어린 나의 마음을, 자란 내가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 내 이야기를 꺼내고 돌아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마음이 묵직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평소처럼 별로 손님이 없었다. 카페 안엔 어머니와 나 둘 밖에 없었다. 적막한 저녁이었다. 말하고 싶었다. 묵혀왔던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았을 때도, 해결되지 않는 기억을 붙잡고 엄마를 미워하며 씁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엄마, 그런데 있잖아. 나 어렸을 때 엄마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있었어...”      


엄마가 어린 내게 뿌렸던 물 한잔이 기억에 남아서 날 계속 힘들게 해 왔다고. 

말을 꺼내기까지는 30년이 걸렸는데, 정작 얘기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랬다고?”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과 대신 당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버지 때문에 어떤 심정이었는지 말했다. 이야기는 원망과 눈물을 쏟아내며 길게 이어졌고 나는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그래, 엄마도 정말 힘들었겠다 말했다. 머리로의 공감일 뿐, 내게 늘어놓는 변명처럼 느껴졌다. 


밤을 밝히는 하얀 가로등 불빛 아래 나무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터벅터벅. 걸었다. 상대방은 기억하지도 못할 일을 나 혼자 수십 년을, 이고 지고 살아왔구나. 항상 내 한구석을 채우고 있던 눅진한 공기가 빠져나갔는데 무게는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말을 꺼내 털어놓은 건 잘한 일이라 날 다독였다. 얘기하지 않았으면 난 계속 그 기억에 붙잡혀 뱅뱅 똑같은 자리를 돌고만 있었을 테니깐. 그때 나 참 아팠다 말은 했으니깐.           


한 달쯤 지나 다시 카페에서 만난 어머니는,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었다고?”          


내가 꺼냈던 이야기를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곱씹고 있었다. 내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내 마음은 어땠는지 물었다.           


내 아픔을, 신경 쓰고 있구나.           


어머니의 그 물음에, 30년 동안 내 마음속에서 주야장천 상영되었던 어린 시절의 장면은 상영을 멈췄다.           

이제 그 일을 떠올리면 내가 어머니에게 얘기를 꺼내고, 어머니가 내 아픔을 되물었던 장면까지 연이어 생각이 났다.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었지만 종결된 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위해 용기를 냈고, 이야기를 꺼내놓은 장면까지 후속편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말이 바뀌었다.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채널입니다. ^^

https://youtu.be/ZerQ9xuTSxE    알츠하이머 10년차 아빠의 친구

이전 04화 아빠는 왜 엄마한테만 그랬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