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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pr 22. 2023

사랑하는 남편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나 때문에


봄비가 포슬포슬 내리다 그친 화요일 저녁. 퇴근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날 보고 유일하게 웃는 얼굴을 찾아냈다. 남편이 몇 번 가본 적 있다는 동백식당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담한 식당 안 눅진하지만 포근한 봄밤의 공기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막걸리잔에 그려 넣어진 둥그런 동백꽃이 우릴 바라본다.    



며칠 전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요새 무기력과 우울감이 자꾸 없어지지가 않아서 내일이나 모레 병원 한번 가보려고.. 가벼운 우울증인가 싶기도 하구. 두통도 계속 있고... 아까 그거 이야기하려고 전화했어.”     


내 머릿속은 번쩍번쩍하며 속 시끄러운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그러나 어쩌면 이제서야 입 밖으로 꺼낸 정신과라는 말에 내 멘탈은 칭얼거림을 멈추고 자세를 곧추 세웠다.     

남편은 이전부터 아침이면 회사에 가기 싫다고 ‘나는 개똥벌레~’ 노래를 부르며 화장실과 안방을 쏘다니다 출근을 하곤 했다. 최근 들어서 회사 일이 힘들다는 얘기를 더 자주 했다. 우울의 원인이 회사 때문인지 물었더니,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찾아냈을 답을 꺼낸다.


“일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생각은 내가 책임지고 도울 사람은 많은데, 날 도와줄 존재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힘들어도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는 거, 내겐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날 힘들게 해.”     


우리 집의 상황상 어쩔 수 없다고, 외면했던 남편의 삶이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결혼을 하며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남편의 어깨에도 같이 얹어졌다.  내 우선순위는 아픈 아버지였다. 아버지 간병비는 내가 해결하고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장인어른에게 집을 내어주고 병원비를 책임져야 했으며 간병비로 탈탈 털린 아내에게 자신의 카드를 쥐어줬다. 그리고 아내가 불 꺼진 침대 위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문득 슬퍼져 울 때면 다독여주어야 했다. 게다가 그는 맏아들로 본가의 형편상 매달 생활비도 드려야 했다. 그의 삶은 남편, 아들, 사위로서 해야 하는 의무들로 가득 차있다.


“지금 상황에 우리가 아이를 낳게 되면 양육비도 그렇고. 부담이 더 커질 텐데 괜찮을까?”

나는 최근 임신을 준비하느라 벌이가 신통치 못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나와 그에겐 부모의 역할까지 추가될 것이다. 내 질문에 어두운 낯빛으로 남편이 답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아이까지 갖기를 포기한다면. 난 더 마음이 힘들 것 같아.”


남편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했지만, 장인어른을 웃는 낯으로 만나는 걸 조금씩 어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혼자 끌어안고 해결해보려 했던 그는 못내 슬퍼졌다. 며칠 후 예고대로 남편은 정신과 병원에 다녀왔고 우울증 초기 진단을 받았다. 여느 때와 같이 서로의 손을 잡고 누운 밤, 남편이 잠결에 손을 발작처럼 떨었다.  정신적인 지지와 위로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했다. 사랑하는 남편의 고통을 두고만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를 외면할 수도 없다. 아버지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절충할 수 있는 해결책이 과연 있는 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식탁 위에 돔베고기와 배추와 당근, 버섯을 담은 냄비가 보글보글 끓었다. 동백식당의 사장님은 나와 같은 시대를 풍미한 사람일 것이다. 노래 선곡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우리 부부의 인생 노래 성시경의 ‘두 사람’ 이 흘러나왔다.



봄비의 여운이 남아있는 밤과 같은 성시경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신촌역 2번 출구 맥도날드 앞의 전경, 안경이 콧잔등에서 미끄러져 약간 맹하게 보였던 그의 귀여운 첫인상.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아 오락실에서 신나게 놀았던 이야기를 했다. 언제고 했던 얘기라는 걸 알면서도 또 그 얘기냐 타박받는 일이 없는 질리지 않는 레퍼토리이다.      


남편은 고기와 야채를 듬뿍 건져 내 그릇에 덜어주며 이제는 자신이 먹는 것보다 내가 잘 먹는 게 더 기쁘다고 한다. 나긋해진 배추를 건져 먹고 있는, 풀 죽은 내 정수리에 대고 그가 말했다.      


“내가 강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가장으로서 이겨낼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일들에 꺾여버려서 미안해...”      


고개를 들어 보니 그는 덧니를 드러낸 채 따끈한 양볼을 빛내고 있다.

자기가 미안할 것도 아닌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편 앞에 몹시 더 미안해진 나는 눈꺼풀을 깜박였다.


가족들을 위해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며 가족들에게 미안해지는 그 마음을 안다. 힘들어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될까 봐 사과를 하고 있었다. 양껏 힘들어하지도 못하고.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내가 정말 미안해. 당신을 홀로 가장으로 세우고 싶진 않았어. 진짜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남편은 습기를 한껏 머금어 부스스 헝클어진 내 곱슬머리를 쓸어주었다.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채널입니다.

 https://youtu.be/oTYt0tqm7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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