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신혼집의 낯선 천장이 보인다.
나는 아빠와 동생과 함께 지내던 작은 집을 떠났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하룻날 결혼식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똑 떼어져서는 아내라는 이름을 하나 얻어 이제 막 그어진 흐릿한 테두리 안으로 발을 옮겼다.
남편과 느지막하게 아침을 차려 먹고 있었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언니 어디 갔냐고 자꾸 찾아.”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아빠는 내가 어제 결혼식을 했다는 것을 잊었다.
한 입 떠먹고 있던 김치찌개의 고춧가루가 마음에 팍 뿌려진 것처럼, 속이 화끈했다. 어찌나 마음이 매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결혼 첫날 아침부터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당황하는 남편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코를 팽 풀어댔다. 밥을 채 다 먹지 못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이혼을 한 아빠 곁엔 엄마가 없다. 딸들 뿐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아빠와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이혼가정의 자녀들은 홀로 남은 부모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어야만 하고 심리적으로도 큰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둔 나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아빠 곁에 홀로 남은 동생은 내 결혼을 누구보다 축하해줬지만, 한편으론 현실적인 부담과 불안을 애써 내게 내색하지 않고 있을거였다.
남편은 차를 몰아 아버지 집 앞으로 날 데려주었다. 두툼하고 따뜻한 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아버지 잘 뵙고 와.”
“미안해. 이따가 내가 전화할게.”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기를 담은 잠잠한 공기가 작은 집을 채우고 있다.
나를 본 아빠는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너 어디 갔다 왔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