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엄마가, 나를 떠났다는 게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어서인지 모른다. 아빠와의 갈등으로 버석이며 쩍쩍 갈라져갔던 엄마가 우릴 품는 게 한참 버거웠을 때, 나에게 끼얹었던 물 한 컵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날 사랑한다는 걸 느끼면서도 자꾸 그 사랑의 이유를 물었다.
사랑받고 자란 강아지들은 태가 난다. 가난한 주인 할아버지 손 붙들고 나온 강아지의 차고 있는 목줄은 볼품없어도, 사랑받는 강아지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이 난다. 강아지뿐 아니라 집안에 식물들도 사랑받는 애들은 때깔이 다르다.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내 양껏 들이키지 못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수시로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그에게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묻고 있었다. 약간의 의아함을 품은 채. 어떤 이유로, 나의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날 사랑하는 것인지 캐물었다. 나조차 발견하지 못한 걸.
남편은 입에 발린 소리를 잘 못했다.
연애 시절 5년, 결혼한 지 5년. 도합 10년. 왜 날 사랑하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건질 수 있는 답은 석연치가 않았다.
“민이는 날 왜 사랑하는 거야? 어떤 점 때문에?”
“집착과 끈기.”
“뭐야? 집착과 끈기? 지구력..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왜 날 사랑해? 나는 어디가 제일 예쁜 거 같아?”
“핑크색 두피.”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차 휑해지고 있는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민이는 그럼 내가 대머리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여자 대머리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
“당신이 대머리가 되는 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
그는 잠잘 때 말을 걸면 대답을 하고, 깨어나면 기억을 못 한다. 잠자는 그의 무의식에서 진솔한 답을 들을 수 있겠지. 잠든 그에게 물었다.
“민이, 민이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민이는 내 어떤 점이 젤 좋아?”
“짧은 턱.”
나는 얼굴이 둥글고 턱이 작고 짧다. 남편은 종종 내 짧은 턱을 손가락으로 잡고 초식동물의 턱이라며 놀리곤 했다. 자면서도 짧은 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니. 하하.. 한참을 웃었는데... 기분이 썩 좋진 않네.
하루를 다 보내고 컴컴한 방안 침대에 누워 그와 대화를 하다, 또 불쑥 물었다.
“민이, 왜 날 사랑해?”
“허허. 또?
“지금까지 계속 물어봐도, 이상한 대답들만 하잖아. 내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아. 진짜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뭐야. 난 정말 궁금하단 말이야”
“음. 사랑하는 이유를 뭘 하나 딱 짚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연애 때 그 질문을 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결혼해서도 계속 물어볼 줄은 몰랐어.”
“내가 이 질문을 할 때는 말이야. 어떤 마음에서 하는 거냐면, 내가 민이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나도 물어보는 거야. 민이도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서. 난 민이를 사랑하는 이유를 백가지도 더 얘기할 수 있는데.”
“아.. 그렇구나. 그래서 물어보는 거였구나”
‘왜 날 사랑해?’라는 내 질문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게 된 그는 어둠 속에서 내 손을 잡으며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구구절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날 밤, 나를 왜 사랑하는지 구구절절 말해준 내용이 퍽 감동적이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곧 기억에서 지워졌다. 애석하게도 임팩트가 강했던 짧은 턱, 핑크색 두피, 집착과 끈기라는 대답만이 기억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날 왜 사랑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보단,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넌 어때’라는 번역된 말을 듣고 웃던 그의 모습이 남았다.
나를 사랑하는 너에게, 사랑을 묻고 또 묻는다.
이미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물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듣고도, 이미 알고도 왜 자꾸 묻게 되는지.
미안하지만, 좀 귀찮아도 이런 나를 이해해 줘.
당신의 사랑으로 내 때깔도 좀 고와지겠지.
*배경사진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