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 못된 남편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맹렬하게 미워한다.
입천장을 홀랑 벗기는 순댓국이 식는 데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계란프라이를 부쳐 낼 것 같은 작열하는 여름은 3개월을 넘기지 않으며, 너 없이는 죽을 것 같은 뜨거운 사랑도 몇 년이면 식기 마련인데, 결혼생활 내내 버석버석 묵혀있던 미움에 옮겨 붙은 불은 활활 꺼지지 않았다. 이혼을 한 지 20년이 넘었어도 그 화기가 여전하다. 미움은 사랑보다 그리움보다 그 어떤 감정보다 아주 끈덕지고 강렬하다.
자신이 집을 나갔던 이유를 말하며 펑펑 울던 어머니의 얼굴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어렸을 땐 몰랐던 어머니의 상황들이 차츰 보였다. 집을 떠난 원인 제공자가 아버지라는 것, 어머니가 가해자만이 아닌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미움의 대상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여야 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에서 홀로 우리를 오랜 시간 키웠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은 더 복잡했다.
날 버린 어머니가 밉지만 이해하고 싶었고 아버지 역시 그랬다.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었던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고, 왜 유독 어머니에게만 못되게 굴었는지, 왜 좋은 아빠는 되었어도 좋은 남편이 될 수는 없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 날 힘들게 했던 원인을 이해하고 부모님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다. 이를 덮어놓기만 한다면 이 모든 게 평생토록 날 아프게하는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니깐.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아빠였다.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아버지는 자신도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손아래 동생에게 교복을 맞춰 준 날, 그 교복을 자신이 입어 봐도 되는지 물었다. 교복 모자까지 갖춰 쓰고 지었던 서글픈 웃음을 동생은 기억했다. 아버지의 주변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던 형, 진실한 친구, 딸들을 사랑했던 좋은 아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착한 심성만으로는 본인의 가정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남에게 모질지 못한 행동은, 제 아내에겐 모진 일이 되었다. 형님이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 집 장만을 꿈꾸며 청약을 붓고 있던 아내가 반대했다. 아내의 만류에 귀 기울이지 않고 기어코 형님에게 명의를 빌려주었다. 예상했던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과 결과는 자신뿐 아니라 한 배를 탄 아내도 함께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제 가족을 위해 형제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부모에게 선을 그어야 할 때,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관계를 끊어내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아내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콩이 콩을 낳았다.’
아버지는 나를,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낳았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중학교 등록금은 없었어도 도박판에 끼어들 돈은 있던 사람이었다. 분통을 터트리는 할머니 앞에서 집안 물건을 뒤엎고 부쉈으며, 할머니 역시 집안의 물건과 같이 깨어졌다. 문제는 이를 지켜보던 상처받은 아들의 가슴이, 아버지의 모습을 부지불식간에 새겨 버렸다. 못된 남편의 모습만 배우고 정작 꼭 해야 할 일, 아내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배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알았지만 고치지 못한 걸까.
그토록 귀여워했던 아내는 20년이란 세월 동안 악다구니 쓰는 여자가 되었다. 남편을 차갑게 외면했다. 어머니는 변해버린 자신의 태도가 남편의 잘못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물이라 여겼다.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은 알았지만 그래도 날 이해해 줄 수 없는지 오히려 서운한 마음을 품었다. 서로 사랑했던 사이여서 더 미워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음식을 크게 씹는 소리도 못 견뎌했다. 밥을 먹는 모습조차 거부당한 아버지는 아내의 입장을 더욱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연을 자식이 다 알 수 없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건과 켜켜이 쌓아온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모든 걸 일방적인 아버지 탓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만 더 잘했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덜 괴로웠을 거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곁을 지켰던 할머니처럼. 하지만 할아버지의 장례식날 자식들은 울었어도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몇 년 후 아버지 앞에 나타난 어머니는 기대와 다르게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부부는 본디 그런 거였다. 20년을 함께 살았어도 두 사람은 합의로 맺어진 남남일 뿐, 언제고 약속이 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던 거다. 부모 자식은 핏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부부 사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사랑과 정을 기반으로 한 상호 동의로 이어지는 관계이다. 그렇기에 부부는 가장 조심성을 기울이며 살펴야 하는 사이인데 나의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내 역시 '남'이라는 걸 알고 주변사람에게 하는 것 만큼 따뜻하게 대해줬더라면 떠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아내가 함께하는 아버지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다. 자녀들을 홀로 키우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외로움이 몸서리치는 노년을 보내지 않았겠지. 치매에 걸렸어도 사랑받은 기억을 품은 아내와 자녀가 함께 곁을 지켰을 터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어머니였는데 그걸 몰랐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로 남는 걸 포기했지만 부모의 자릴 포기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혼에 이르기까지, 이후에도 두 사람은 많이 힘들었고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모님의 갈등과 헤어짐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나는 많이 쓰라리고 슬펐다.
묻고 또 묻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왜 우리 집만 이래?” 답 안 나오는 불만 가득한 질문을, 그 후엔 우리 부모님은 어떤 점에서 안 맞았는지. 어머니는 왜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아버지는 왜 좋은 남편이 될 수 없었는지, 부모님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등을 묻는다. 이러한 질문들은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때때로 다른 해석과 답을 내린다. 내 마음은 해결하고 싶은 거다.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내 마음은 끈기 있게 이 과정을 이끌어 가고 있을 것이다.
*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채널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Lt7oWo9fT08
*대문사진 : 우먼센스 https://www.womansense.co.kr/woman/article/22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