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Jun 18. 2022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확신이 생길까?

결혼이 두려운 당신에게

“모르겠어. 왜 그런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아. 그게 그 사람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내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어. 우리 집 환경 때문에 내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그러는지 말이야.”     


 29살의 봄. 1년을 만났던 남자 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180이 넘는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녔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쯤 괜찮은 국산 차를 샀다. 그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아파트에 차를 두 대 소유하고 그럭저럭 살았다. 수더분한 분들 같았다. 딱 한번 만났을 뿐이지만 나를 맘에 들어했다. 결혼 조건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 얘기에 뒤로 물러섰다. 확신이 들지 않았다.      


‘왜 이 사람과의 결혼이 행복할 거라 기대가 되지 않는 걸까?’ 

마음속에 탐탁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데 정확하게 짚어낼 수가 없었다. 그의 어떤 면에 대해 나의 미묘한 촉이, 그와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의 불화 속에서 자라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이 없는 나의 문제 때문일까.      

나는 남자 친구에게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그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며 확신을 주길 원했다. 그러나 자신과의 결혼을 망설이는 상대에게 받는 상처를 이기고, 다가와서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가 않다. 결국, 우리는 얼마 못가 헤어졌다. 확신 없는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31살이 되자 내 주변 사람 9명이 결혼을 줄줄이 했다. 솔로가 된 나는, 그때의 내가 바보 같은 결정을 했구나 생각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이혼가정의 자녀들이 결혼했을 때, 이혼율이 더 높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부부간의 불화가 있을 때 이혼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아닌 사람들보다 더 쉽게 이혼을 떠올리고 이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이렇게 답습하게 되는 건가.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 보고 배운 것이 없는 내가 결혼을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남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때면, 우리 집 이야기를 언제쯤 어디까지 꺼내야 하는지 고민했다. 나의 가정사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인지 살폈다. 숨기고 싶진 않았지만 드러내기도 쉽지 않았다. 

결혼할 상대는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면 좋겠다고. 화목한 가정 안에서 많이 웃으면서 살았던 사람은, 그 웃음을 닮은 결혼생활을 만들 수 있겠지. 부모님의 불화가 많았던 가정에서 힘들게 움터낸 사람들은 어딘지 일그러진 마음으로 자라나 온전한 결혼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있을 테니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는 흠이 있는 사람처럼 떳떳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연애나 결혼 앞에서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앞에서도, 내 부족함에 대해서 양분 없는 토양 탓을 하곤 했다.      


32살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소개팅 첫날 우린 서로 잘 맞겠구나 알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번듯한 직장은 있었다. 자기 집은 없었지만 자기가 번 돈으로 바퀴벌레가 가끔 출몰하는 원룸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차는 없었지만 돈을 모으기 위해 차를 사지 않는 경제관념은 있었다. 가끔은 데이트를 위해 부모님 차를 빌려와서 익숙지 않은 운전을 하며 진땀을 빼는 모습이 귀여웠다.   

      

4년을 만났다. 결혼을 말하는 그에게 내가 처음 꺼낸 말은 “난 결혼이 무서워.”였다. 함께 겪었던 시간과 일들이 많았음에도 결혼 앞에서 난 또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이미 많이 웃었다. 우는 날도 있었지만, 더 많이 웃었다. 혼자 사는 것보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고 마음이 이번엔 명확히 말했다. 

36살의 봄. 그렇게 결혼을 했다.      


그랬다. 이혼가정이라는 홈그라운드가 결혼에 대한 확신을 막았던 것이 아니었다. 29살에 만났던 그 사람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바람은 괜히 불지 않았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알았다. 그때 내가 결혼을 택했다면 난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거다.      


남편이 된 그에겐 우리 부모님의 이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했던 것만을 통해서만, 그는 나를 바라봤다. 불화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남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그는 나에게 귀 기울였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결혼을 망설였을 때, 당신도 상처받았을 텐데 왜 나랑 헤어지지 않았어?”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

“돌이킬 수 없다니. 뭐야. 왜 자포자기한 것처럼 들리는 거야?”   

“마음을 이미 많이 줘서 돌이킬 수 없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