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Mar 29. 2023

엄마가 상견례를 말아먹었다.

나 여사는 왜

결혼식을 두달쯤 앞두고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서로의 가족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최선을 다해 차려입고 식당에 모인 우리는 어색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다행하게도 그럭저럭 별 탈 없이 흘러가나 했는데. 내 어머니, 나여사가 갑자기 뜬금없는 선포를 했다.


“너! 우리 딸 때리면 내가 파묻어버린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여사는 주먹까지 들어 올린 채였다. 한정식 코스 요리가 고상하게 나오고 있는 상견례에서 듣기 힘든 과격한 언사였다. 호의를 나타내려 애써 들어 올린 입술들은 그만 꼬리를 내렸다. 나는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어머니를 말렸으나 애석하게도 다다다 말 많은 입은 쉴 줄 몰랐다. 욱하는 성질의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나여사의 고향인 전라도 사람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욕을 잃었으나 치매에 걸린 내 아버지만이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야무지게 먹고 있었다.     

 

난장판이 된 상견례를 마치고 남자친구는 알아서 수습해 보겠다며 본인의 가족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본래도 어두웠던 그의 눈밑은 이제 창백한 푸른 기가 감돌고 있었다.

가뜩이나 가진 것 없는 집안에 교양까지 없게 만들어야 했어?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분통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마주한 식당 입구에서부터 배알이 뒤틀려있었다.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집을 나간 후,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은 두 사람의 22년 만의 만남이었다. 상견례 일에 대해 따져 묻는 나에게 사과는커녕 소금 세례를 받은 지렁이가 몸을 격렬하게 비틀 듯 진저리를 치며 과거 결혼생활에 대한 한탄을 쏟아냈다.    

  

안방을 지키고 있던 괴팍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걸핏하면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럼에도 곁에 있는 남편은 아내를 품고 보호하는 방법을 몰랐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집안에 빚은 쌓여갔다. 점차 시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남편으로 인해 어머니는 혼자 노랗게 곪아갔다. 아버지는 우리에겐 좋은 아빠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왜 그런지 유독 어머니에겐 상처를 주는 나쁜 남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서 행복할 수 없음을 알았다. 부모라는 역할을 짊어지기에 앞서 한 사람이고 여자라는 걸, 그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하지만 머리로의 납득이었지 어머니가 우리를, 나를 버렸다는 건 뱃속깊이 상처로 남았다. 넌 날 미워하잖니. 어머니의 말을 나는 예의상으로도 부인하지 않았다.      


오은영 선생님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상견례의 파장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 여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꾹 붙인 채로 혼주석 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예식이 끝나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외갓집 식구들 곁에서 눈물 콧물을 연신 닦고 있는 나여사가 보였다.      


결혼 후, 나여사는 명절이 되면 고향 나주에서 달짝지근한 배를 구해다가 매번 나의 시댁에 보낸다. 김장철이 되면 갓 담은 시원한 김치에 수육을 삶아 사위를 부르고, 살림에 서툰 날 위해 가끔 바리바리 반찬이며 국을 싸준다. 받아온 된장국을 냄비에 넣고 끓이는데 국물이 바깥으로 튀어 오른다. 고추처럼 매운 미움, 애호박처럼 둥글한 고마움, 양파처럼 알싸한 그리움 등이 뒤섞여 부대끼며 흘러넘친다.      


서른 중반을 넘긴 딸들에게 결혼을 재촉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 사는 삶도 나쁘지 않다며 독신의 삶을 권유했다. 아마 불행했던 자신의 결혼을 딸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견례 때 사돈이 될 사람들 앞에서 주먹을 쳐들며 과격한 말을 한 것은 으름장을 놓아서라도 딸을 지켜야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과거 어머니에게 시댁 식구들은 그런 존재였을 테니깐. 그리고 딸을 지킬 수 있는 건 치매에 걸린 남편이 아닌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 앞에서 어린 딸들과 떨어져 지낸 시절을 회상하며 섧게 울었다.


막내가 혼자 손톱을 깎던 날, 그 모습을 바라보고 한참 울며 집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나간 후 끊임없이 딸들 주변을 맴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분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꾸렸지만 딸들이 다니던 학교 근처, 커서는 직장 근처로만 이사를 다녔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아내의 자리는 내려놓았지만 엄마이기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30년가량이 흐른 지금에야 ‘엄마가 날 버린 건 아니었구나’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긴 시간 동안 여태 나는 이 한 문장을 간절히 바라왔구나 싶었다. 나도 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머니를 향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미움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가끔 삐죽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이전까지 어머니가 내게 아물지 않는 상처였다면 이제는 흉터가 된 것 같다.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더 이상 진물을 내거나 아프지는 않고, 애써 상처를 보듬으며 새살이 차오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흉터 말이다.  






- 대문사진 출처  : https://tutunara.tistory.com/50

- 채널 A 오은영 금쪽상담소 캡처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채널 입니다. ^^.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youtu.be/tNJu7lBYDm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