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은 회사만 수만 개인 일본의 기업문화

Interest_시간을 경영한 기업들

by 권동환

교토 청수사 인근의 뒷골목을 걷다 보면, 기와지붕 아래 달린 작은 간판에서 낯선 감성을 느끼곤 한다. 오사카의 세련된 네온사인 대신 세월의 흔적이 묻은 목조 간판에는 "쇼에이도"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쇼에이도의 한국 명칭은 송영당이다. 송영당은 1705년경 교토에서 창업한 전통 깊은 향 전문점이다. 창업 당시의 이름은 '사사야'라고 즉 '대나무집'이었다고 한다. 이후 3대째에 현재의 상호명인 '쇼에이도'라는 이름으로 향 제조에 나서며 21세기가 영업을 하고 있다. 창업 이후 12대째 이르기까지 향을 만드는 길만을 고집하며 오직 향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곳의 조향 레시피는 문외불출이며, 조합 기술과 노하우는 대대로 이어져오는 전통 방식으로 전수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교토 본점 외에도 오사카, 가나가와, 홋카이도, 도쿄 등 직영점을 두고 사업을 하며 향 문화를 알리는 문화 황동 및 향 체험 공간 그리고 이벤트 운영 등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세대와 외국인에게 다가가고 있다. 창업 300년이란 사실은 한국에서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100년이 넘은 회사만 수만 개, 200년이 넘은 기업도 3천 개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의 상당수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하다.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교토의 쇼에이도

교토에는 1400년 이상을 이어온 세계 최장수 기업도 존재한다. 나라현의 건축회사 곤고구미다.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이 불교 사찰을 짓기 위해 세운 회사인데, 현대사회까지도 목조 건축 전문 회사로써 일본 곳곳에 신사와 절을 건축하고 있다. 한 나라의 왕조가 바뀌고 제도가 무너져도, 기업 하나만큼은 묵묵히 이어져 오며 전통 건축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규슈 야나가와에는 500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장어덮밥집이 있을 만큼 일본에는 크고 작은 장수기업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장어덮밥으로 유명한 규슈의 야나가와


일본에서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첫 번째 이유는 가문 중심의 경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혈연이 단절되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는 문화가 있다. 단순히 '가족 사업'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경영 능력을 고려해 인재를 '가족화'하는 제도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의 기업은 세대를 거듭해도 단절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 상인들의 가치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용이라는 개념이다. 에도시대 상인들은 판매자가에게 이익이 되고, 구매자가 만족하며, 지역사회에도 보탬이 되어야 장사가 오래간다고 믿었다. 실제로 일본의 오래된 상점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지역 축제에 기부를 하거나, 고객과 친분을 이어가며 한 동네의 역사와 함께 호흡한다. 기업은 이익집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장수의 비결이다.


세 번째 이유는 전쟁이 없는 안정기가 장수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기업이 무너지거나 새로운 기업이 태어나는 일이 반복된 유럽과 달리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수백 년 동안 큰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끊김 없는 역사'가 장수기업의 토양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일본 사회가 오래된 기업을 일종의 문화유산처럼 존중하는 문화 덕분이다. 여행자들은 100년 된 가게를 일부러 찾고, 지역주민들은 그런 장수기업들은 자랑스러워한다. 그렇기에 장수기업은 경제적 자산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물론, 일본의 장수기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변화에 보수적인 경영은 때로 혁신을 늦춘다. 세계적으로 IT기업들이 급성장하는 동안, 일본의 오래된 기업들은 변화에 느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강점은 '느림'에 그 자체에 있다. 높은 상승이 깊은 계곡을 만들지만 느리게 성장한 회사는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교토의 오래된 향 제조집 '쇼에이도'에서 '300년'이란 세월을 단순히 숫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300년이란 세월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한 가족의 역사, 한 지역의 기억, 한 사회의 가치관이 겹겹이 쌓여 만든 상징이었다. 일본의 장수 기업은 그래서 특별하다. 단순히 오래 버틴 기업이 아니라, 시간을 경영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쇼에이도에서 판매하는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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