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_화혼양재
일본으로 역사 기행을 떠나며 선입견을 버리겠다고 다짐한 것은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 역사에서 근대적 서구화의 기틀을 마련한 메이지유신은 바로 이 화혼양재라는 틀 위에서 성장했다. ‘화혼’은 일본의 전통 정신을, ‘양재’는 서양의 기술을 뜻하는데, 이는 서양의 선진 문명을 일본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조화롭게 재해석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메이지유신의 대표적 산업유산인 미이케 탄광(평범한 하루, DAY)과 군함도(최고의 장소, GREAT)는 일본이 서양의 발걸음에 맞춰 근대화를 실현한 현장이지만 동시에 ‘강제노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었다.
화혼양재의 특징은 의외로 식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단팥빵, 고로케, 라멘 같은 음식이 일본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들 모두 외래 문화를 일본식으로 변형해 만든 것이다. 아시아에서 보기 드물던 빵에 단팥을 넣어 만든 단팥빵, 인도에서 전래된 카레를 재해석한 카레우동과 카레라이스, 프랑스의 크로켓을 변형한 고로케, 중국의 만두와 라면을 일본식으로 바꾼 교자와 라멘, 그리고 일본 3대 요리 중 하나로 꼽히는 튀김(텐푸라)조차 16세기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방문한 포르투칼인들에 의해 텐푸라가 퍼지기 사작했다. 요즘의 텐푸라와 다르게 16세기의 텐푸라는 소금과 설탕 그리고 알코올로 조미된 밀가루를 사용해서 돼지 비계를 튀겼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텐푸라는 포르투갈어로 양념을 뜻하는 ‘템페루(tempero)’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식문화만 보더라도 일본인들이 외래 문화를 ‘재창조’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외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일본다운 것’으로 변모시키는 능력은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일본인의 사상과 행동양식 속에 뿌리내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개방적인 태도로 백제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던 역사적 경험, 그리고 정유재란 때 조선 도공들을 강제로 데려가 백자 제작 기술을 흡수했던 사건은 일본이 외래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성격을 구축해온 증거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본다면 화혼양재는 독창성 없는 모방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강한 호기심과 외래 문화 수용에 대한 거부감 없는 태도 덕분에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근대적 서구화가 자국 중심주의와 제국주의로 이어져 침략이라는 비극을 낳았듯, 발전과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랐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일본의 성장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달은 화혼양재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본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일깨워 준 여행 속의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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