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프 오너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 미국만큼 자동차 문화에 진심인 곳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십 년이 된 자동차도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어 새 차처럼 운행되고 있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포르쉐, 맥라렌,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같은 슈퍼카도 LA 시내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지만 나의 시선을 끌었던 자동차는 지프였다.
지프에 대한 첫 기억을 되짚어보면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20년 전에는 SUV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오프로더 차량을 모두 짚차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지프에 대한 인식이 다른 나라보다 더 깊게 새겨져 있는 것도 특이점이다. 지프의 조상으로 불리는 윌리스 MB라는 군용차가 머나먼 한국에 시발 자동차(쌍용 자동차의 전신)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시발 자동차는 1955년 미군이 버린 윌리스 MB의
부품을 모아서 지프를 재생산했음) 그래서인지 유독 한국에서는 쌍용 코란도, 기아 록스타, 현대 갤로퍼와 같은 차량을 짚차라고 불렀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실제로 영국의 오프로더 브랜드인 랜드로버의 탄생에 영향을 줬으니 지프가 SUV의 시조라고 불려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지프는 군용차로써의 인식도 강하다. 그것은 세계 제2차 대전에 탄생한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는 여전히 군용 SUV의 고유대명사 격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만큼 튜닝을 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른 차량들에 비해 엄청나기 때문에 충성 고객이 많다. 충성 고객이 많은 만큼 벤츠와 아우디 같은 독일 브랜드 차량의 오너들과 달리 동호회가 아주 끈끈하기로 소문이 날 정도다. 그런 이유에서 지프에 대한 시선은 미국여행에서 당연시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지프 오너니까.
그래서, 지프 오너로써 특이한 튜닝을 한 지프 혹은 연식이 오래된 지프를 볼 때마다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의 지프 동호회는 아주 끈끈하다. 실제로 오프로드를 하다가 차량이 늪에 빠져 탈출하지 못할 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지프 동호회에서 출동해서 구출해주기도 한다. 다만, 모든 지프에 해당되지 않는다. 랭글러와 글레디에이터. 두 차종에 대해서만 끈끈함과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다. 한 가지 웃긴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글레디에이터는 랭글러에 비해 아직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서 글레디에이터끼리 만나면 손짓을 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런 한국에서의 지프 문화를 즐겼기에 미국의 지프 오너들에게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한편으로는 '무쓰'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지프를 타고 미국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서 표출된 애정 어린 시선이었을 수도 있겠다.'무쓰'는 루프탑텐트와 온갖 캠핑 장비가 실려있는 화물트럭으로써 여행에 최적화된 차량이라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하늘이 알았는지. 나에게 색다로운 경험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곳은 그랜드 캐년. 자연의 위대함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곳에서 '무쓰'와 똑같은 차종인 지프 글레디에이터를 발견했다. 운전해서 가던 렌터카를 급히 멈추고 주차를 했다. 글레디에이터라는 모델은 LA에서도 많이 봤지만 유독 그 녀석만큼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차주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내가 '무쓰'에게 선물하고 싶은 새로운 옷(튜닝)들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 2~3분이 흐르자, 아주 건장해 보이는 남자가 차량을 향해 걸어왔다.
"글레디에이터 네 거야?"
그의 이름은 쿠싼. 처음에 경계를 하던 그에게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있는 ‘무쓰’를 보여주자 모든 경계심을 풀고 친숙하게 다가와줬다. 미국의 공군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의 트럭에 왜 타이어가 많은지 어떤 튜닝을 했는지 알려줬다. 아주 신나게 말이다. 그러더니 대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글레디에이터 운전해 볼래??”
자신의 운전대는 일반적으로 절대 맡기지 않는 것이 전 세계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그는 눈앞의 동양인이 자신과 같은 브랜드의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대를 맡긴 것이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친구도 아닌 일면식도 없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니까. 또한,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생각해 본다면 내가 쿠싼의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전과 모험 그리고 운전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여행자였다. 정중하게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1.3미터 높이의 차량에 탑승하고 운전했다. 차량의 높이를 올리는 인치업 튜닝이 되어있는 그의 글레디에이터는 보이는 시야가 나의 ‘무쓰’랑 전혀 달랐다.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트럭 위에 올라가서 그랜드캐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라며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에게 허용적 태도를 보여줬다. 사실, 이런 에피소드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떠올리면 함께 떠올려질 아주 강렬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머나먼 미국에서도 경험한 'jeep community'.
그랜드 캐년=jeep community
라는 공식을 선물 받은 그런 하루로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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