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적은 우리 집 가훈
초등학생 때 꼭 숙제 중 하나로 집 가훈 적어오기가 있었다. 뭐든 평범하지 않은 우리 아빠는 '생긴 대로 살자', '니나 잘해'라는 가훈을 적어주곤 했었다. 외모에 예민한 중, 고등학교 때에도 마찬가지로 생긴 대로 살자가 가훈이기 때문에 성형수술은 안된다고 말씀하셨고, 뭐든 깊게 생각 안 했던 나는 아 그냥 진짜 생긴 대로 살았으면 좋겠나 보다 싶었다.
꿈보다 해몽
'생긴 대로 살자'라는 말 뒤에 성형 수술은 안된다~! 는 말이 항상 붙으니까 나는 진짜 그런 뜻인 줄 알고 살았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이 말은 온전히 '나'로 살라는 말이었다. '니나 잘해'는 언뜻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 탓하고, 남 욕하기 전에 너부터 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실 아빠의 해몽이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장난스럽게 말했던 말이지만 나에게는 어느새 삶의 철학이 되어 있었다.
언제나 나의 도전을 뿌듯해하는 아빠
'생긴 대로 살자'라고 말하고, '너부터 잘하라'라고 말하는 아빠 밑에서, 나는 정말 '나'는 누구일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이고 뭘 해 먹고살 수 있을까. 정말 나에게 모든 결정을 하게 해주는 부모님 덕에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말 부딪히며 배우는 중이다.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갑자기 교사가 되겠다고 대학원을 갔다. 임용고시 준비를 한 번 해보니까 도저히 내가 공부를 할 자신이 없어서 기간제를 시작했다. 과학고, 일반고, 자사고를 모두 경험하게 되었고, 공무원 생물 교수를 지나 지금은 입시 강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도 시작하고, 책도 읽고, 엄마성 쓰기 운동도 해 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나를 찾는 일들을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도전을 할 때마다 내 맘대로 할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불안한 마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아빠는 그때마다 뭐든 도전하는 딸이 멋있다고 말해준다. 그 응원 덕에 나는 참 여러가지를 하며 살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생긴 대로 사는 나의 결혼식
아빠의 말을 거스르고 턱 보톡스를 맞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나'다움을 뽐낼 수 있었던 건 나의 결혼식이었다. 확진자가 많이 줄고 특히 지방에서는 확진자가 거의 없었을 무렵, 강릉에서 나는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큰 언니와의 입장을 슬프다며 거절했다. 딸을 넘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큰언니도 안 했는데 너만 입장을 해줄 수 없다며 나와의 입장도 공평(?)하게 패스한 아빠였다. 나는 남편이랑 동시 입장은 싫었다. 뭔가 남편이 복도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가 천천히 걸어가는 그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조용하게 입장하고 싶지도 않아서, 과감하게 각자 노래를 부르며 입장하기로 결정했다. 언제나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남편과 나를 이해해주는 부모님들 덕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하늘을 달리다>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머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하늘을 달리다
뻔한 노래도 싫었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보던 중, 마침 이적님이 아내분을 위해서 썼다는 노래인 하늘을 달리다가 우리의 입장곡으로 당첨되었다. 집에서 연습할 때도 얼마나 재미있던지, 결혼식 전까지 노래 때문에 너무 떨렸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며 한 명씩 입장하고, 함께 쓴(드립이 가득한) 혼인서약서를 읽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과의 인사 때도 웃긴 에피소드 덕에 사진들이 다 싱글 벙글이었다. 너무 나다운 그리고 우리 다운 결혼식을 한 날. 비싼 돈 주고 영상까지 찍었지만 너무 오글거려서 보는 것은 1주년 기념일로 미뤄두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해준 덕에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서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아빠는 이날 나를 처음 보자마자 강릉 멀어서 다씨!!!!는 안 온다는 게 첫마디였지만, 결혼식날 사진에 담겨있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시선은 두고두고 봐도 좋다. 주례 대신 아빠는 성혼선언문을 읽어 주셨다.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거라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아빠가 성혼선언문 꼭 읽어줘야 한다는 셋째 딸의 고집은 못 이겼다. 그리고 집에 내려가기만 하면 수제 치즈도 만든 거 다 퍼주고, 요즘 피부 뒤집어졌다고 알로에도 싸주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해준다. 장난처럼 다 퍼가라 다 퍼가~라고 하지만 정말 다 퍼주는 아빠의 언행불일치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