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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정 Sep 05. 2023

코커두들두

살림의 꾸밈말 5

아들 나이 이제 만 9세. 화성에서 온 엄마, 금성에서 온 아들 시리즈의 클라이 막스를 찍고 있는 요즘이다. 누군가 '아'라고 하면 상대는 '츄'라고 알아듣는 대화의 흐름은 기필코 한 사람이 성을 내거나 같은 자리를 피하고 나서야 종결된다. 이 어긋남은 하루의 두 끼 분량 식사가 만들어지는 우리 집 아침이 유별나지는 이유기도 하다. 


새벽 여섯 시부터 혹은 그보다 일찍 시작되는 아침 미팅을 마치고 내가 주방에 들어서는 시간은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목청껏 아들을 깨워 놓은 뒤 사과를 자르고, 크라상을 굽고, 메이플 시럽에 우유 한 잔을 준비한다. 그다음은 아들의 점심 도시락이다. 식이섬유, 단백질, 탄수화물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과일까지 씻어 넣으면 벌써 아들 등교 시간이 코앞이다. 아직 내 출근 준비는 시작도 못했건만 아직 방 안에서 뭉그적거리는 아들을 포착하면 나는 곧 슈퍼 킹콩으로 변한다. 아들은 내가 발소리를 유난히 크게 쿵쾅대며 방을 향해 걸어가야만 침대 위에서 기어 나온다. 그러면서 '엄마, 나 스트레칭했어.'라고 한다. 얼마 전 떠올린 발상인 듯한데 들을 때마다 참으로 얄밉다. (얼른 나와서 밥 먹으라는 나의 응수에 그러려고 했다며 짜증 내는 아들이 너무 미워서 들고 있던 당근을 부러트린 적도 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숙제까지 늘어나니 아들을 향해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하는 말들이 생겨난다. 그중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엄마 말 좀 잘 들어!] 진짜 정말로 아들이 내가 하는 말만 귀담아 들어도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다. 멀쩡하게 두 귀가 있고 예민하기까지 한 아이인데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건가? 


그렇게 우왕좌왕 새 학기에 적응하다가 월요일이 공휴일인 긴 주말을 맞았다. 개학 후 딱 3주 만이었다. 오랜만에 너도 나도 조금 느슨해져 보자며 한껏 늘어진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냈다. 그러다가 친한 지인의 초대로 일요일 야외 활동에 나서게 되었는데 찾아간 곳이 조금 의아했다. 그곳은 말하자면 유기 동물 보호소였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한 곳에 모이게 된 동물들은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저마다 품고 있었다. 지인의 아들인 동갑 친구와 함께 동물들의 사연을 귀담아듣고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는 아들을 보니 꽁꽁 언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더불어 사라진 줄 알았던 아들의 환한 미소와 현란한 웃음소리까지 들으니 기운이 났다. 그때였다. 우리 곁에서 아주 크게 닭이 울었다. 


꼬끼오


내 귀에는 정확히 그렇게 들렸다. 도시 한복판에서 쉽게 듣지 못하는 소리였기에 나는 아들에게도 같은 소리를 들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아들이 내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코커두들두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cock-a-doodle-doo는 미국 사람들이 닭 우는 소리를 표현할 때 쓰는 의성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닭 울음소리를 미국 사람들이 듣는 방식으로 익혔기에 꼬끼오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 소리가 어떻게 '코커두들두'일 수 있지 분명히 꼬끼오인데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잘 귀담아듣는다 하더라도 문화적/언어적 차이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 말인 즉, 내가 평소에 선호하고 또 익숙한 표현들이 아들에게는 문화적/언어적으로 낯설거나 혹은 덜 효과적일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닭 잡는 아들...


오늘의 깨달음을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속도로 잊지 않으려면 아마 부단한 노력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내일 맞을 아침에는 아들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 있길, 내가 아는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조금 더 효율적인 대화의 결을 열어 갈 여유를 가질 수 있길 바라본다.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Photobank Ki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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