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7
아니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너도 그랬으니 나도 그러겠다는 심보는 9년 차 양육자가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나는 그런 못난 나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 서러워서 잠을 설친다. 그렇게 오늘도 이불킥 당첨! 검은 장막을 치듯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보지만 아들 저녁상을 차리다 말고 짜증 났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 듯 그게 무슨 말이냐며 동그랗게 눈을 치켜뜬 아들과 함께.
오늘 저녁, 분초를 다투는 스케줄 속에서 소중한 새우 볶음밥을 만들어 저녁 식사로 냈는데 아들로부터 맛없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짜증이 확 났지만 참아 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사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침묵했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들이 '엄마 카드놀이할까?' 하고 말을 걸어왔을 때 몹쓸 말을 던져버렸다. 너랑 하는 카드놀이는 시시해서 재미없다고. (하아...)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들 눈에선 염소똥 같은 눈물이 주룩 흘렀다.
아니 그게 아니지 쌤쌤이지...
눈물을 훔치며 쌤쌤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아들 앞에서 나는 알 수 없는 KO 패를 당했다. 쌤쌤이란 건 그게 그거라고, 비긴 거라고, 영어로 하면 Tie라고 보충 설명까지 하고 나서 내가 한 말들을 돌아보니 어리석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상황이다. 일단 쌤쌤이란 Same, Same의 콩글리시로 말도 안 되거니와 이제 겨우 아홉 살을 채우고 어서 빨리 스물여덟 살이 되어 더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소리를 하는 아들에게 너 노잼이라고 쏘아붙인 것을 잠시동안 정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새우 볶음밥이 맛없다는 현실적인 피드백을 이렇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다니. 나에게 대실망이었다. 망연자실하여 소파에 앉아있는데 아들이 와서 내 곁에 앉았다.
쌤쌤이네
뭐가? 하고 나지막이 물으니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자기도 소파에 앉거나 누워있는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슬픔이 사라진단다. 가끔은 책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면서 나를 위로한다. 나는 아들을 보며 이건 쌤쌤이 아니라고, 네가 대견한 거라고 말해줬다. 못난 엄마를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