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10
방과 후 시작되는 조용한 전쟁 중에서 요즘 가장 심각해진 전쟁은 아들과의 한국학교 숙제 전쟁이다. 아들은 올해 한국학교 4학년 반에 들어가면서 고개 처짐과 한숨의 깊이가 배가 되었고, 나는 덩달아 학습 전략을 잃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들에게 하고 싶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학교에 가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슬펐다.
아들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도록 권하는 일은 생각보다 괴로웠는데 나는 그 쓴맛을 짜릿하게 감추기 위해 게임이라는 회유법을 썼다. 한국학교 숙제 포함, 하루에 정해진 분량의 숙제를 마치면 일정 시간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가족 규칙을 정한 것이다. 대신 한국학교 숙제를 하는 동안 내가 곁에 딱 붙어서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로 했다.
오랜 시간 아들의 질문을 관찰하면서 나는 몇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재외 동포를 위해 만들어진 이 특별한 교과서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조차 입에 담아본 지 너무 오래된 단어나 문장들을 담고 있었다. 또한 평소에 한국말을 아주 많이 써봐야 추측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화해야 하는 내용이라기엔 무척 버거워 보였다. 학습 동기를 잃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재외 동포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배움을 전하는 한국학교 선생님들의 노력도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들의 곁을 지키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엄마, 과식이 뭐야?
나: 과하게, Too much, 그리고 식(食), 먹다, Eating이라는 뜻이야.
내가 설명해 놓고도 참 아이러니한 문장이었다. 과식을 이렇게 설명하다니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런데 아들의 반응이 더 놀랍다.
엄마는 과일이네!
나: 그게 무슨 소리야.
아들: Too. Much. Wor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