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정 Oct 24. 2023

귤맛

살림의 꾸밈말 12

더 늦게까지 안 자겠다고 버티는 아들에게 버럭 한 날. 놀부 심보가 발동하여 내일 아침 7시에 못 일어나면 앞으론 더 일찍 자야 한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다음날 7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공룡 발걸음으로 아들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아들이 먼저 선수를 친다. 엄마 지금 일어나면 돼? 어제 늦게 자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깨우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일까. 괜히 아침밥 뭐 먹고 싶냐고 크게 묻는다. 시린 아침 공기에 으스스 떨면서도 시리얼 한 그릇에 귤 다섯 개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 추워서 옷을 더 챙겨 입고 나오겠다는 야무짐에 대견한 생각마저 든다. 장롱 문을 미 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아들이 나왔다. 체크무늬 가운을 꽉 조여 맨 채 한 손엔 책 한 권을 들고 있다. 그 모양이 꼭 작은 스크루지 영감 같다. 오늘 안 졸리겠어? 하고 물으니 뭐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귤맛은 어때? 하니 Sweet, Sour, Juicy, and Chewy 란다. 아니 그건 오렌지 치킨 맛이 아니냐며 반문하자 맞댄다. 탱글탱글한 조생귤의 알알이 터지는 상큼함을 떠올렸던 나는 오렌지 치킨의 무겁고 둔한 맛이 떠올라 입꼬리를 찡긋한다. 우리 겨울에 한국에 가서 꼭 귤을 먹자고. 한 박스 사서 손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까주겠다고 약속하니 아들이 웃는다. 눈이 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실없는 소리와 함께. 아침 한 시간을 아들과 그렇게 마주 앉아있었다. 귤 까먹으며 책을 읽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고 왼쪽에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봤다. 새근새근 내뱉는 숨소리마저 사랑하며. 


Sweet, Sour, Juicy, and Chewy. 새콤달콤하면서 촉촉 쫄깃한 그 맛이 비단 귤에서만 느껴지는 맛일까. 오늘자 '마음먹기'의 맛이고 '살림'의 맛이지 않을까. '한 사람을 살리는 맛'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