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1
한국이든 미국이든 살림의 범주 안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들이 있다. 움직임을 동반하는 의성어나 의태어로 분류되는 이 말들은 특정 어원을 갖는다거나 하나로 정의되는 뜻을 같지 않는다. 오늘 소개할 단어인 “쓱싹쓱싹”도 그중 하나이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나에겐 위와 같은 사진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이미지는 '쓱싹쓱싹'의 사전적 정의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정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단어는 부사로 첫째, 톱질이나 줄질을 자꾸 할 때 나는 소리, 그리고 둘째 밥 따위를 다른 재료와 비벼서 섞는 모양이라는 정의(출처: 네이버 국어사전)를 갖는다. 부사는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품사다. 따라서 무언가를 꾸며서 보태는 기능보다 동사나 형용사의 방식, 정도, 시간, 장소, 원인 등을 더 자세히 설명하여 한정하고 좁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부사의 기능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에게는 이 부사가 살림을 풍요롭게 하고 살림에 보탬이 되는 꾸밈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꾸밈말은 본래 문장이나 표현을 장식하거나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적 요소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 등에서 비유, 은유 등으로 나타난다. 나는 나에게 매일 반복되는 삶을 장식하거나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부사를 살림의 꾸밈말이라고 부르기로 하며 나의 주관적인 경험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쓱싹쓱싹의 올바른 표기는 '쓱싹쓱싹'이다. 이는 한글맞춤법 3장 6절 13항에 기초한 것으로 한 단어 안에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는 규칙이 적용된 예이다. 실제로 발음을 할 때에는 '쓱삭쓱삭'이라고 발음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발음이 힘들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쓱싹쓱싹 행동하는 것도 힘든데 쓱싹쓱싹 발음하는 것도 힘들다니! (그래서인지 쓱싹쓱싹의 제주 방언은 스르릉스르릉이라고.)
쓱과 싹이 만나 쓱싹, 그리고 두 번 반복하여 쓱싹쓱싹이 되기 전, 나는 땀을 ‘쓱’ 닦거나 빨래에 진 얼룩을 ‘싹’ 빼는 행동들을 반복해 왔다. 때론 어릴 적 배운 기억을 더듬어 유치원에서 터득한 수박송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며 ‘쓱쓱싹싹’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쓱싹쓱싹은 뭔가 달랐다. 정말 많은 쓱싹쓱싹의 사용법을 들어왔지만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지난날 내가 들어온 쓱싹쓱싹의 사용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문지르는 소리: 어젯밤 엄마가 양치질을 하라고 시켜서 쓱싹쓱싹 이를 닦았어요.
2. 문지르는 소리: 오늘 콧물이 나와서 옷으로 쓱싹쓱싹 문질렀다가 엄마한테 혼났어요.
3. 문지르고 비비는 소리: 오늘 엄마가 쓱싹쓱싹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양파가 들어가서 안 먹었어요.
좌우로 문지르거나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반복하는 소리나 연상되는 행동들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뜻으로도 쓱싹쓱싹을 사용하는 것 같다. 아이의 도시락 메뉴를 고민하다가 검색해 본 인터넷에서 ‘아주 쉽고 빠르게 쓱싹쓱싹 만드는 엄마표 도시락’ 등등의 문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주 쉽고 빠르게’라는 수식어가 쓱싹쓱싹의 뜻을 ‘열심히’로 읽히도록 도와주지는 않는 것 같다.
쓱싹쓱싹을 들으면 청소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한가로웠어야 할 오후, 우리 집 인덕션에 낀 때를 보고 있자니 닭볶음탕을 배불리 먹겠다고 양껏 감자와 당근을 때려 넣어 결국 국물을 넘치게 만든 어제의 내가 참 한심해 보였다.
매콤한 국물이 눌어붙은 화구는 오른쪽 하단에 위치해 있는데 요리 중 오른손을 뻗어 조리 도구를 잡기도 편하고 길게 뻗은 주요 프라이팬의 손잡이 부분을 왼쪽으로 향하도록 두기 좋아서 자주 사용해 왔다. 냉털(냉장고 털이)의 혁혁한 공을 세워 온 최적의 화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닦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닦기로 결심했다. 결심과 동시에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찾았다. 어디선가 이 두 조합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얼마 전부터 마음에 아리는 환경보호라는 것을 실천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식초가 없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바로 주방 세제를 사용하여 인덕션을 닦기로 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세제를 풀어 적신 스펀지로 화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처음에 그렇게 비장한 각오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오른쪽 하단의 화구 저편 상단의 화구의 음식자국, 왼쪽 하단 화구의 물때, 그리고 인덕션 벽면의 기름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하원시간은 고작 30분 남았는데 이 타오르는 오기는 무엇인가. 나는 갑자기 전투모드가 켜졌다. 마치 목욕탕 때밀이 테이블 위에 누운 엄마의 등을 제압하듯이 손가락 각을 살려 섬세하고 치밀한 동작부터 손바닥 면적을 이용한 대패질 동작까지. 마지막에 물을 쫘악 뿌려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인덕션과 좌우 상판의 맞물림이 고르지 않아 생략했다. 거품질을 마친 뒤 행주로 닦고, 또 닦고 또. 쓱싹쓱싹은 정말 별로라고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알람이 울렸다. 아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여름 방학 동안 운동 캠프에 참여한 아들은 요새 식성이 좋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배가 고프다 한다. 서둘러 아들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빨간색 파프리카를 씻고 먹기 좋게 자를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조용히 곁에 있는다. 내가 칼질을 시작하는데 아들이 그런다.
쓱싹쓱싹. 파프리카에서 맛있는 소리가 나!
응?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였던가?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껏 들어온 수많은 쓱싹쓱싹의 사용법 중 이토록 신선한 표현은 처음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나에겐 너무 별로인 쓱싹쓱싹의 시간이 아이의 쓱싹쓱싹 해석법으로 맛있는 소리가 되었다. 살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결 상태 복원의 시간이 이제 꼭 별로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맛있는 쓱싹쓱싹의 시간이 곧 찾아올 것임을 알기에.
최근 발견한 살림의 꾸밈말이 너무 좋아서 ChatGPT에게 말을 걸었다.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가 될 수 있을까? ChatGPT의 답변은 훌륭하다.
일반적으로 "쓱싹쓱싹"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거나 부딪치는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어색한 표현입니다.
음식과 관련된 소리는 주로 물결치는 소리, 부드럽게 씹는 소리, 바삭거리는 소리 등이 맛있는 음식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쓱싹쓱싹"은 맛있는 소리를 표현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맛과 관련된 경험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과 연관되므로,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주관적인 경험일 수 있습니다.
맛과 관련된 소리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다른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삭바삭", "크런치", "물끄러미" 등의 표현이 음식의 맛과 관련된 소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ChatGPT의 답변은 부족하다.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닿을 수 없는 제한적인 경험만을 할 테니까. 부사가 살림의 꾸밈말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꿈에도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