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연애 = 자꾸 내 나쁜 모습이 보여지지 않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집중받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면 기분이 좋아졌다.
나와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해지면, 왠지 기분이 안 좋았고,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곤 했다.
커서는... 남자 친구를 사귈 때 적용되었다.
그 남자의 여자는 나만이길 바랬고,
여자 친구인 나와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와는 확실하게 구분해주길 바랬다.
연애를 할 때, 오래된 여. 사. 친이 많은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초, 중, 고 공학 출신에 사람을 가리지 않는 그는 남, 녀 친구의 비율도 딱 6:4였다.
우리의 연애와는 별개로 그는 여. 사. 친들이 있는 모임에 자주 나갔고,
나에게 다정하게 챙겨주듯, 여. 사. 친들을 챙겨주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여. 사. 친이 있는 곳으로 가 같이 술을 마셔주기
운동을 좋아하는 여. 사. 친과 주말에 운동 모임 가지기
여. 사. 친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사람들을 소개해주기
뿐만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매너와 배려도 여. 사. 친들에게 배분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럴 수 있지....라고 말도 안 되는 내면 설득을 했으나
내 감정은 절대 평온하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연애를 남중, 남고, 군대, 공대 코스를 밟은 남자와 해왔기에
문과에 여. 사. 친이 많은 남자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고,
겉으로는 이해심 없어 보일까 봐 싸우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결국 속앓이들은 다른 사건 다른 사건들로 꼬투리를 잡으며 싸웠다.
나중에는 내가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남자는 나에게 말하지 않고 여. 사. 친들과 어울려 다녔다.
‘다 알고 있어!’ 결국 우리는 서로의 행동을 의심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이 싫었다.
‘내가 이렇게 피곤한 스타일인가?’, ‘이해심이 없는 여자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고,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사교성이 좋은 그 남자는 우리와의 갈등을 여. 사. 친에게 고민 상담하였고,
이 사실까지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연애를 할 수가 없었다.
(The End)
그 후 나는 다시 한 사람만 바라보고,
여자 친구와 여. 사. 친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질투와 의심병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둘만 서로 행복하게 집중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이성에 대한 어떠한 갈등이나 사건을 만들지 않았으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주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아니 고마웠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선 긋고 이해해 달라고 들이대는 연애가 질렸다.
드디어 감정이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그가 ‘나 지금까지 잤어’라고 하면 정말 잠이 들었구나,
‘운동하고 연락할게’ 하면 ‘그래, 열심히 해!’ 하고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나는 질투가 내재되어 있는 사람인데,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며 이해해달라고 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투심이 있다고 말했을 때, 싫어하는 모습을 하지 않고, 감싸주는 그가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단점이 있는 것 같다.
질투, 집착, 아니면 어떠한 열등감...
이런 단점들이 발현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관계가 좋다.
상대의 기분이 어떻든 자기의 인간관계와 사생활을 논하며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쿨하고 도시적인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임을 그는 끝까지 모를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나 이유로 계속 싸운다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계속하면서 감정 소비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한발 물러나 주고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결론 지어야 한다.
바뀌지 않는 상대와 같은 이유로 갈등을 계속한다면,
내가 이렇게 싫다고 하는데도 들어주지 않는게 무슨 사랑인지,
그저 많은 일상 중 하나로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연애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를 보여 줄 수 있고,
나의 약점이 발현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