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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25. 2024

내가 자주 쓰는 말 하나

-하지 마

  "얘들아 뛰지 마!" "달리지 마!"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말이자, 높은 확률로 하루동안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여태껏 나는 한 번도 층간 소음에 대한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지금 사는 이 집에 11년째 살고 있다. 남편과 나 둘로 시작해서 말 그대로 새끼를 쳐 셋으로, 넷으로, 다섯으로 수를 불렸다. 그동안 아랫집은 이사를 나가며, 들며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사람 수가 늘수록 내는 소리도 커졌을 텐데 어찌하여 그 나고 든 이웃들은 한 번도 불만이 없었는지. 남편은 이웃이 천사라 했고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지 않은 나는 아랫집이 비어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작년 말에 부동산을 겸하는 또 다른 이웃에게서 현재 우리 집 아래는 한 노부부가 살고 계신단 귀띔을 받았다. 자식들을 보러 서울에 자주 올라가신단다. 남편과 나의 추측은 둘 다 맞기도, 틀리기도 했던 셈이다. 집 안에서 뛰지 말라고 해도 뛰고, 달리지 말라고 해도 달릴 때, 부모의 읍소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부산에 계실 수도 있고 서울에 계실 수도 있는 아랫집 할아버지는, 세 명의 아이들에게 부모가 지르는 호통보다 더 큰 고통을 몰고 올 존재로 역할하고 계신다.(망태 할아버지와 동급이다)


 대신에 이 천방지축 아이들은 저녁 9시 30분이면 방의 불을 다 끄고 침대로 들어가, 아무리 늦어도 10시에는 잠에 들도록 키워졌다. 인간의 뇌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불확실함이라는데, 층간 소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소음의 크기와 강도보다는 소음이 전해져 오는 시간의 예측 불가성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아랫집 어르신들은 저녁 9시 30분만 지나면 조용해지는 우리 집을 너그럽게 봐주시는, 실제로 좋은 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달리 내 상상 속의 아랫집 할아버지는 매우 인자한 얼굴을 하고 계신다.

 

 아이들을 9시 30분에 잠자리에 들게 한 후, 우리 부부는 보통 티브이를 한두 시간여 보고 나서 11시 30분을 전후로 침대에 눕는다. 그때는 윗집의 발망치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시간. 그 퍼레이드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며, 매우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길은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너그럽게 눈을 감는다. 아전인수 격이기는 하나 아랫집으로부터 호의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나 역시 윗집에 호의를 베풀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친절은 돌고 돈다. 내게 베풀어 준 사람에게 꼭 갚지 않아도 괜찮다. 대학 신입생 때 3월 내내 선배들로부터 점심을 얻어먹고, 다음 해에는 내가 선배가 되어 신입생들에게 한 달간 점심을 사주었던 것처럼. 가끔은 친절이 전설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기도 한다. '뛰지 마’, ‘달리지 마’ 뿐 아니라 ‘-하지 마’는 어떤 동사 뒤에도 착 달라붙는데, ‘친절하지 마’는 정말 안 어울린다. 역시 '하지 마’ 보다는 '해’야 하는 친절. 오늘은 세 녀석들이 집 안에서 뛰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볼까? "얘들아, 좀 친절해!" 아이들 귀에는 좀 진정하라는 말로 들릴 것이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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