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 'THE 막차'
막차. 어딘가 트롯트 감성(뽕삘)이 느껴지는 말이다.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나에게는 보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버이날 엄마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끊겼으려나, 마음 졸이며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에 가서 전광판을 보는데
타야 할 버스번호 옆에 '막차'가 떠있는 걸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버스가 끊기면 (미터기 숫자가 팽팽 줄어들어 눈이 돌아가는) 할증 택시라도 타면 됐지만,
곧 백수가 될 내 수준에 택시 타는 건 사치다.
봄이라지만 약간은 싸늘한 바람이 부는 자정 넘은 시각.
'막차를 기다리는' 내가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다음 차는 오지 않는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
마음으로는 퇴사가 답이면서 '소득 제로'가 두려워 끙끙 고민만 하는 지금,
'인생의 막차'라도 탈 수 있을까.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을까.
살면서 내가 참 '어중간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딱히 못하는 일 없이 두루 꽤 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또렷하게 독보적으로 잘 하는 '하나'가 없다.
중간만 가는, 164cm의 내 키처럼.
어중간한 인간! 그저 남이 주는 월급 받으면서 따박따박 출퇴근이나 할 것이지
대단한 것도 없으면서 그 나이에 퇴사를 하겠다고...
홀로 서있는 정류장,
택시가 잠시 속도를 낮춰 나를 흘깃 비웃고 지나간다.
운 좋게 막차를 만난 것처럼
필살기 없는 내 인생에도 막차가 와주기를 기대해볼까.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얼마든 기다릴 수 있다.
막차가 올 거라는 믿음만 있다면.
버스에 오르며 기사 아저씨한테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한다.
고마워요, 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