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아니 Feb 21. 2020

코로나 사태의 육아

#이지안 이야기-18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싸움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은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르다.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당연하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이 다르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도 다르니. 나는 눈에 보이는 위험을 많이 경계한다. 육아 와중에 벌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 많이다. 아이가 어디에서 떨어지거나 머리를 부딪히거나 찔리거나 넘어져 뒤통수가 깨지거나 하는 상황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지안이를 돌볼 때 거의 혼자 두지 않는다. 잡아주고 안아주고, 지안이가 이를 거부하면 하다못해 멱살이라도 잡는다.


아내의 관심 포인트는 다르다. 아내는 세균을 두려워한다. 이는 어머님의 영향도 좀 있다. 처댁에서 어머님의 요리과정을 볼 때 마다 정말 신기했다. 식기도, 채소도, 도마도, 식재료도 모두 수돗물로 씻은 뒤 꼭 최종적으로는 '정수기 물'로 한번 더 씻는다. 밥먹기 전에도 새 그릇을 꼭 다시 정수기 물로 씻는다. 정수기 없이 살아온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할 수 밖에. 아내는 그런 자신의 엄마를 가끔 못마땅해 하면서도 결국은 닮았다. 세균과 세척에 민감하고, 바이러스에 민감하다. 그러다보니 가끔 내가 하는 "더러운 것도 집어먹고 해야 면역력도 높아지고 건강하게 크지!"라는 개뼈다구 뜯어먹는 말은 아내의 성질을 긁는다.


요 며칠의 사태는 아내 손을 들어줬다. 이제 맥주로도 보기 싫은 코로나 말이다. 코로나인지, 우한 폐렴인지, 코로나19인지, 코비드19인지 하는 그 요상한 중국발 바이러스 말이다.


ㅅ?   山?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자마자 지안이를 번쩍 안아 360도 뱅뱅 돌리고 청룡열차를 태워주는 행복이 있었는데 요즘은 사라졌다. 집에 가면, 문이 열리네요, 그쵸 그대가 뛰어오죠, 지안아 오지마! 나를 보고 좋다고 달려드는 이지안을 피해 잽싸게 옷방에 들어가 옷을 전부 갈아입고 손세정제를 온몸에 바르다시피 한 뒤 나와서 다시 손을 씻고 나서야 지안이를 안아올린다. 그러다보니 아기는 처음에 서운해서 울었고, 요즘은 아빠가 와도 바로 안아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학습해버렸는지 본체 만체 한다.  세정제를 바르는 과정이 좀 수월해지긴 했지만 뭔가 서운하다. 이게 다 그 코로나 때문이다.


어쩔수 없지 않은가. 하루 종일 마을버스, 사무실, 서점, 엘레베이터, 식당 등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나는 접촉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망할놈의 바이러스는 내 양말에 붙었을지 소매에 붙었을지 볼에 붙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휴직 중인 아내는 요새 하루 종일을 대부분 아기와 집에서 보내느라 외부와의 접촉 자체가 거의 없지만, 나는 아기에게 무척 위험한 '외부 인자'인 셈이다.


곤혹스럽게도, 우리 부부와 아이가 함께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을 갈 때가 바로 산부인과 진료다. 저출산이 난리라더만 산부인과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바글바글하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이제 걸음마에 제법 재미를 붙인 이지안은 여기저기 위태롭게 뛰어가고 나는 이지안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째려보며 경계한다. "오바하시네"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시국이 이런걸.  사람들과 직접 닿을 일 없는 동네 산책 정도야 맘편하게 한다 해도 마트나 시장에 갈 땐 유모차 레인커버를 씌운다. 마치 그게 KF96 마스크 마냥 바이러스를 막아주기라도 할 것 처럼.


원래는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베이비 카페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여기저기 함께 다니자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아기도 아기지만 우리 부부가 매우 갑갑했으니까. 좀 데리고 놀만하다면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집에만 있으면 실내 공기가 더 나쁘고, 아기도 서울 공기 강원도 공기 제주 공기 다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베이징 공기는 예외지만. (예전 여행 때 며칠 마셨더니 목에서 연탄냄새가 났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부부의 주말 계획은 통째로 엎어졌고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게 됐다. 


어떻게 저렇게 늘어질까


3월이 오면, 4월이 오면 좀 나아질까. 주변에 물었더니 날이 따뜻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도 힘을 잃는단다. 그 반대일 것 같은데. 이유를 뭐라뭐라 들었는데 까먹었다. 그래, 이유는 그지 중요치 않다. 봄이 온다면, 봄만 온다면.


밖을 나갈 수 없으니 집안의 모든 놀이도구를 한 번 씩 거쳐가며 노는 나날이다. 미끄럼틀 탔다가 텐트에서 놀다가 아기피아노 쳤다가 체육관 놀이 했다가 그러다 지치면 낮잠도 자고. 나는 나대로 집안 일에 정신이 없고, 이것저것 온라인 쇼핑을 시킨다. 이번주는 아마 망치질 드릴질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주방에 놓을 선반을 만들 작정이다. 어젯밤 원목과 못이 도착했다. 매우 뿌듯하게. 


엄마 아빠들의 요즘 육아는 다 비슷할 것 같다. 답답하고 두렵고 방책은 없고. 애 키우기 힘든 나라에서, 애 키우기 더 힘들게 만드는 바이러스까지 난리다. 


이 또한 어서 지나가기를.










작가의 이전글 꽃길만 걸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