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기쁨
어느 날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은 외국에 아는 동생을 따라 여행을 갔다. 그 사이 국내는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집에 머물면서 14일의 격리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지인은 일자리를 부탁하고 막상 일을 시작하기는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그러자 궁리 끝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알바를 그만둔 상태였다. 한 3개월만 다녀보고 그만두게 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이력서를 낸 상태였고 일손이 부족한 자리였다. 막상 하던 여행사업을 따라다니던 것을 그만 두기는 아직 여유가 있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도 지인은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 흔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지인이 귀국을 하고 자가 격리하는 사이 인원이 다 찼다. 지인의 권유대로 나는 이력서를 넣었고 지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일자리는 사람을 구하고 두 자리 정도 남았다. 지인은 가타부타 확실하게 대답을 안 한 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주게 일자리 있느냐는 말만 한다. 몇 번의 통화가 오갔지만 사무실로 오지도 않고 있었다. 나는 곧 사람이 다 찼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같이 이름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해요"라며 지인이 말한다.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지? 하는데,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반문을 하지 못했다. 나의 외모를 보고 금방 장미꽃처럼 이름이 생각날까? 오히려 나보다 유명한 거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였다. 그녀나 나나 외모는 그냥 수더분하다. 나는 모르겠는데 길을 가면 누구랑 비슷해서 어디서 뵌 분 같다고 인사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착각이지만 기분이 으쓱해진다.
나를 보고 첫인상을 어느 기업 며느리를 말하는 분이 있다. 초면에 인사할 뻔했다며 그곳에 데려다 놓아도 믿겠다 한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뉴스에 나오면 나도 유심히 보게 된다. 아주 예쁘지 않지만 그냥 모나지 않은 현모양처 같은 외모다. 이제 나이 들어 거울보기 싫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나를 잊고 산다. 정작 생각할수록 그녀가 내가 원하는 외모가 아닌데 나를 비슷하다고 지칭하니 서운하다. 그래서 예쁜 사람들 보면 부럽다. 턱에서 얼굴을 보다 눈까지 나무랄 데 없는 비율에 속으로 감탄사가 나오는 이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 나도 여자고 여자도 예쁜 여자가 보고 싶다. 사람 마음 다 똑같다. 마음 운운하는 건 외모가 승차권이고 통행증이 되는 사회에 너무 쉽게 사는 그 뒤에 마음 착한 분들의 마음 다칠까 배려하는 마음 일 거다.
꽃은 펴야 꽃이다. 이름은 불러야 이름이다. 얼굴 보고 누구나 알아봐야 진짜 유명인이다. 풀꽃은 볼 때 예쁘면 꽃이다. 유명인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고 눈이 그 사람을 향해 관심 가져야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다.
이름 모를 꽃 들이라고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저마다 특징이 있고 색과 향기가 있고 좋아하는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남들이 그 이름을 모른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꽃에는 향기가 나고 나비와 벌이 찾아오면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유명한 꽃들은 꽃집에서 판다. 남들이 살만하니까 사는 거겠지 하고 이름을 몰라도 비싸면 산다. 남들 앞에 내밀 때 풀꽃을 주면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외래종에 다루기 편한 장미는 판매 1위다. 이름값을 한다. 나는 꽃집 꽃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음식점 메뉴판은 퓨전음식으로 이름이 이상해서 외우기 어려웠다. 횟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식상하지 않게 진화를 했다. 꽃은 많이 찾는 꽃이라야 이름도 유명하다. 그게 장미다. 흙 장미는 검붉고 정열적인 색이라고 한다. 똑같은 종에 색이 다양해지고 꽃말이 다 다르다. 의미를 부여해야 기념일 일 때 찾기에 사람 이름도 의미가 중요해졌다. 한자의 속뜻과 소리 나는 음에서 느껴지는 느낌까지 한 사람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말 대신 시각적인 것이 어필의 도구가 되면서 있지 않은 직함으로 행사하는 이들이 많다. 여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회사의 직급은 남자들 사회에 진입할 수 없던 여건을 말해준다. 이름 뒤에 차장, 대리. 과장 등. 그 직급이 그 사람 외모와 매치가 안 될 때는 그저 웃으며 넘기는 웃기는 일들도 있다. 명함은 더 독특하게 자신을 어필하는 수단으로 색상과 디자인이 다양해졌다. 그만큼 어렵게 명함을 박던 시대에서 싸구려 냄새 구리며 명함은 빛을 잃었다. 똑같은 이름에 직장까지 같으나 사람이 다른 해프닝 같은 사기 사건은 사건사고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상품 가치 있는 꽃들은 온실재배를 한다. 벌레를 없애고 오래 피게 하기 위해 물에 약을 타기도 한다. 유명인은 오래도록 남들에게 보이려고 보톡스로 주름진 얼굴을 편다. 피부 노화를 감추기 위해 시술이란 이름으로 동안의 모습을 만든다. 꽃들도 역사가 오래되니 남다른 꽃이 탄생한다. 형광물질이 들어간 빛나는 꽃들은 개발자에게 돈을 벌어주었다.
나는 유명하지 않다. 내 이름 아는 사람보다 얼굴을 좀 더 아는 이 고장 사람으로 13년을 살았다. 외지인들이 많아지고 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기존에 아는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끼리 알뿐이다. 특별한 직함과 명함도 없다. 그녀는 뭘 나 보고 알라는 것일까? 쉽게 살면 쉽게 산만큼 값을 치를 날이 온다. 누군가의 계산되지 않는 꾐에 빠져 한 번은 어울려 편할 수 있지만 그 무리에서 쓸모가 없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 창피함과 따돌림으로 고립돼서 배타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누군가 심어놓은 화분 갈이에 떠넘겨질 수 있다.
나는 꾸준히 아이들과 성장하면서 취미생활과 생업을 이어갔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낸 거도 없다. 회사원인 남편에 가난한 가치관에 잡혀 힘들게 경제생활을 해왔다. 부모님 역시 검소하고 몸을 쓰며 가업을 일구는 것을 보여줬다. 내 외모가 늘 변동 없이 조용하다고 부드럽고 여유 있어 보인다고 풍파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짐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소리 내지 않고 신음하지 않았을 뿐 나 혼자 겨울을 살아냈다. 그러지 않고 남 앞에 자기 말을 할 수는 없다. 고생은 인생을 철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쉽게 물들지 않게 한다. 시련을 피해 숨지도 도피하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다 끝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젖은 머리 자고 나면 제멋대로
다시 젖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나는 가슴 가득 먹구름이 피어오를 때면
나는 행복하다
나는 즐겁다
나는 기쁘다 말해준다
행복한 얼굴이 뭘까
즐거운 것은
기쁘다는 것은?
그 제서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지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식어가고
체온을 잃어가고
누군가를 비교하며
그에 그림자로 살게 된다
손에 잡기 좋게
위로 자라는 풀을 뽑았더니
다음 차례로 난 풀들은 눕기 시작한다
풀은 줄다리기할 때 내가
엉덩이 힘까지 보태서 눕는 거를 아는지
잡아끌어도 뒤로 자빠질지언정
호락호락 끌려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풀포기를 감싸 쥔 두 손으로
공손히 끌어내자 그제야 따라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손에 잡힐 정도로 자라는 풀들은
반평생 근심 걱정을 먹고 자란 내 마음처럼
두서없이 인도에 자리를 잡고
등 대고 키 재기하는 친구들처럼 자란다
피부 밖으로 삐져나와
볼을 비비면 따갑던
아버지 얼굴에 작은 점들
깎을수록 더 거칠게 자라나 거친 턱이 된다
나는 내 마음에 시름을 뽑듯 풀들을 뽑고
반듯한 사람이 되어 그 길에 서있다
몇 칠이 면 풀은 얼마든지 오라며
시멘트 벽돌을 비집고 일어선다
벽돌을 감싸 안은 체
실핏줄 같은 많은 손들이
섬세한 줄기로 자라
볼모로 잡힌 벽돌을 집고 퍼져나간다
갈라진 인도 곳곳이 화분 인양 잘도 자란다
공사장으로 가는 덤프트럭에서 인도에 뿌려져
흙을 덮고 덤으로 자란 풀은
흙을 한 줌 쥐고 있을 뿐
고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손 가는 대로 한 줌 흙을 가졌을 뿐
뽑히면 흙을 털리고 말 지하는 심정으로
빈손을 내어 준다
해는 제 앞에 구름이 가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나는 해가 없어
밖이 싫어 나가지 않고
날씨야 어떻든
내가 빛나지 않는 곳을 밝히면 될 것을
밝음 속에 서 있기만 바라는 해나 나나 똑같아
자신을 보고 싶어 해가 뜨면
물기 흐르는 눈들은
일제히 밝음이 좋아 눈을 들었다
밤의 베개를 베고 누우면
낮과 밤은 하나의 세계
그 세계로 나는 소환된다
꿈의 무대에 서 있는 나는
같이 공연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들을 본다
낮에 기억으로 사는 나는
꿈으로 가는 길에
러시아로 열기구를 타고
추운 눈이 내리는 지상을 새처럼 나는
꿈속에서 못할 게 없는 역할
나는 꿈의 무대에 주인공
무게를 느끼지 않고도
외로운 밤 계단을 오르며 학교를 가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공간에 더 질척대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