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에 맞서지 마라."
주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본인 고집대로 정부 정책에 맞서 투자를 감행하면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정부 정책에 따라 투자 방향을 설정하면 1백 미터 경주에서 바람을 등지고 달리며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모든 불리한 여건을 뛰어넘고 승리를 쟁취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임에도 끝내 뒤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로 바람을 등지며 달린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높은 순위를 기록할 것이다.
대학 입시에도 정부정책에 맞서지 말아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최소한 의예/치의예/한의예/약학과 진학에 관해서는 말이다. 정부는 2023학년부터 지역의 우수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의약계열 입시에 지역인재의 비율을 40%(강원/제주권 20%) 이상 선발하도록 규정했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제1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0조)
이러한 조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기존 30%(강원/제주권 15%)에서 40%(20%)로 대폭 상향조정하여 지역인재의 의/치/한/약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선발 비율을 더 이상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로 명시, 각 대학에게 강제준수 의무를 부과하여 지역인재의 의/치/한/약 진출을 제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출처: Veritas 기사 중 발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기가 치솟는 의/치/한/약의 지역인재 40%(20%) 의무선발은 생각보다 그 파괴력이 크다. 지역인재 선발이 의무가 아니었던 작년, 일부 의대의 경우 지역인재 비중이 전체 모집 인원의 80%가 넘었던 곳(동아대 82.4%)도 있었으며 전남대(70.4%), 전북대(70.0%)도 그 수치가 70%를 상회했다.
물론, 연세대 미래캠퍼스(의예과 14.6%), 상지대(한의예과 9.5%)처럼 수치가 낮은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방 대학 의/치/한/약의 지역인재 선발 비율은 30~60%에 이르렀다.
2023학년도부터 시행된 지역인재 의무선발에 따라 6개 권역으로 나뉜 지방 대학의 의/치/한/약 지역인재 수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전남대 의예과는 전년 대비 32명을, 조선대 의예과는 18명의 지역인재를 증원하였다. 특히, 부산대와 동아대 의대의 경우 사실상 수시전형에서 지역인재만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대학 입시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의 문이 넓어진 만큼 다른 쪽의 문이 좁아지는 구조다. 즉, 지방 출신 고등학생의 의/치/한/약 문호가 넓어진 만큼 수도권 출신의 학생들은 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통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고등학교 3학년은 총 431,118명으로 이중 49.1%인 211,542명이 수도권에, 나머지 219,576명(50.9%)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국가통계포털). 2023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총 447,669명으로(재학생 308,284명), 이를 고3 인구비율에 대입하면 수도권 응시자는 219,805명, 비수도권 응시자는 227,863명이 된다.
전국 의/치/한/약 모집인원은 △의대 39개교 3,087명(정원 외 72명 포함), △치의대 11개교 643명(정원 외 13명 포함), △한의대 12개교 751명(정원 외 36명 포함), △약대 37개교 1,944명(정원 외 201명 포함)으로 총 6,423명이다. 이중 의/치/한/약의 지역인재 모집인원은 각각 855명, 169명, 143명, 361명 등 총 1,528명이다 (충남일보).
<출처: 종로학원> 이 두 수치를 결합하면 지역인재 40%(20%) 이상 의무모집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지방 응시생(227,863명)에게는 우선 1,528개의 자리가 지역인재라는 이름으로 할당된다. 수도권 거주 응시생(219,805명)은 지방 응시생과 함께 나머지 4,895개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수도권 응시생 입장에서는 지역인재 의무모집으로 인해 1,528개의 의/치/한/약 지원 자체가 원천봉쇄되는 만큼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한다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일부 입시전문가는 의/치/한/약 입시가 목표라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이전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최소한 의약계열 진학이 목표인 자녀를 둔 가정이 굳이 자녀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올해 중2가 치르는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현행 지방에서의 고등학교 3년 졸업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소재한 중학교 졸업'이 추가되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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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제15조(대학의 입학기회 확대) ② 지방대학의 장은 지역의 우수인재를 선발하기 위하여 의과대학, 한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및 간호대학 등의 입학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사람의 수가 학생 입학 전체인원의 일정비율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지방대학의 장은 해당 지역의 시ㆍ군ㆍ구 간 균형있는 선발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개정 2018. 12. 18., 2021. 3. 23.>
1.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소재한 중학교를 졸업할 것
2. 해당 지방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졸업예정자를 포함한다)
3. 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학교의 재학기간 내에 해당 학교가 소재한 지역에 거주할 것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0조 ③ 법 제15조제2항부터 제4항까지 및 제6항에 따른 해당 지역의 범위와 학생 최소 입학 비율 등은 별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