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0세를 1년 앞둔 시점, 나는 열심히 운동 중이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탕수육 소스에 ‘찍먹' 하듯이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한 도전 중이다.
우선 피트니스 레슨. 재정적 타격이 크지만 투자라 여기고 과감히 질렀다. 아파트 헬스장에서의 나 홀로 운동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올바른 동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단 한 번의 레슨이면 족했으며, 감각이 없던 ‘등 어딘가 부위’에 생긴 근육통에 신경이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름 열심히 한 덕에 일평생 불가능했던 턱걸이가 가능해졌다. 아직 한자릿수에 불과하지만 80킬로 넘게 나가는 몸뚱이를 온전히 내 힘만으로 들어 올리는 쾌감이 꽤 쏠쏠하다.
역시 돈값을 한다.
체험을 위해 한 달 등록한 권투는 2주 간 열심히 다니고 잠정 보류한 상태다.
그간 배운 것이라고는 줄넘기와 ‘거울 보며 제자리 뜀뛰기’가 전부다. 권투라면 으레 떠오르는 현란한 펀치는커녕 팔 한번 뻗어보지 못하고 하차했다.
숨넘어갈 듯 체력을 쏟아부은 후 찾아오는 상쾌함이 상당했지만 평소의 통증이 심해졌다.
권투에 재미를 느낄 때 즈음, 오른발 뒤꿈치 쪽 아킬레스건 염증이 도졌다. ‘길게’ 운동하기 위해 통증이 잦아질 때까지 잠시 보류 중이다.
그리고 다음 주, 몇 년을 망설이던 크로스핏에 도전한다. 부실한 몸과 저질 체력에 엄두가 나지 않았던 터에 드디어 몸 상태가 도전해 볼만 해진 듯 해 용기 냈다.
20대, 30대에도 느끼지 못했던 운동에 대한 열정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최고조에 이르렀다. 바디 프로필 찍기나 ‘3대 500kg' 달성 따위의 목표 때문이 아니다.
뭐 할지 ‘몰라서’다. 정확히는 퇴직 후의 계획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서다.
정년퇴직이 제법 남아있지만 나는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구상 중이다. 준비되지 않은 퇴직에 상처가 난 삶이 얼마나 애잔한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멀게는 정년퇴직하신 선배의, 가까이는 50대 후반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하신 아버지의 삶이 그랬다. 그런 삶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바람직한 영향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른 나이에 퇴직 후 삶을 그리는 것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지만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생활비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자격증 준비도 좋을 것 같고, 취미 겸 특기를 살려 평생교육사로의 진로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흰머리를 날리며 세계 곳곳 도시에서의 ‘한 달 살기’는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모두 좋은 계획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지금 당장 착수할만한 동기요인이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고 퇴직 준비를 미루며 마냥 시간 가기만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있다면 비록 느리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좋을텐데.'
많은 고민 끝에 의외로 간단한 답을 얻었다. 바로 '건강 챙기기'.
건강한 신체 없이는 돈벌이도, 취미생활도, 그리고 여행도 불가능하다.
반대로 건강한 신체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라 공부에 매진했다는 어느 명문대 입학생처럼, 나도 퇴직 후 뭐 할지 몰라 건강에 매진 중이다.
공부를 잘해야 장래 희망이 생겼을 때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지고, 건강해야 퇴직 후 삶의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화 끈을 꽉 졸라매고 운동하러 나선다.
오늘도 퇴직 후 삶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쁘게 차오르는 숨과 흐르는 땀의 양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