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보호소를 바라보다.
호주 멜버른의 버우드(Burwood)에는 RSPCA(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센터가 있다. RSPCA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동물 복지 단체로 학대받은 동물이나 버려진 동물들을 보호하고 입양 지원과 교육을 통해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곳이다. 이곳은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 토끼, 말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 하루는 집 앞 정원에서 날지 못하고 푸드덕 거리는 비둘기를 통에 담아 센터로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며칠 후 어떻게 치료하고 어디로 보냈는지 연락이 와서 놀란 적도 있었다. 이 센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현대화된 시설이다. 물론 전 세계 모든 센터가 다 같지 않겠지만 깔끔한 외관과 넓은 잔디 운동장, 그리고 동물들이 생활하는 큰 견사는 상처받은 동물들이 지내며 새로운 주인을 찾기에 충분히 아늑해 보였다. 유학 생활 중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끔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다녀온 후에는 나만의 입양 센터를 디자인해보곤 했다. 성견이 지낼 수 있는 깨끗하고 넓은 견사, 출산한 개와 강아지들이 지낼 수 있는 따뜻하고 독립된 공간, 실내외가 연결된 고양이 방, 그리고 손님들이 마음껏 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테리아. 그저 손으로 끄적이는 정도지만 부자가 되면 꼭 실천해보고 싶은 나만의 센터를 만들고 기획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곤 했다.
유기견에 대한 소소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로엠이라는 아이를 알게 된 이후이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는 한 온라인 친구의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로엠이라는 아이가 구조되었는데 교통사고인지 학대인지 골반부터 뒷다리 쪽에 큰 수술이 필요해서 후원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좋아요 누르고 지나쳤을 포스팅.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이동하는 차의 뒷좌석 유리 아래까지 최대한 큰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수술비 전액을 후원했다. 유학생 신분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지만 조금 덜먹고 더 일하면 된다는 생각에 단체에 후원금을 송금한 것이다. 이후 로엠이는 수술을 잘 받고 회복했다. 여전히 사람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길에서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쉼터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로엠이가 쉼터를 탈출한 것이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아이라 답답해서였을까. 사람이 없는 저녁에 철망을 뚫고 탈출한 로엠인 쉽게 잡힐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지나치게 높은 아이였기에 함께 견사에서 생활했던 다른 아이를 이용해 유도해도 다가올 생각이 없었다. 이후 CCTV에 몇 번 나타나고 저 멀리 논두렁에서 한두 번 모습을 보인 것을 마지막으로 로엠이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너무나 허무했다. 그와 함께 가슴 한편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어떻게 관리했기에 견사를 탈출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때마침 한국에 잠시 들어올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내어서 봉사 겸 쉼터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직접 방문해 본 쉼터는 내가 그리던 그림과 전혀 달랐다. 비닐하우스 안에 촘촘히 짜인 흙바닥 견사와 열악한 수도, 전기시설, 그리고 1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내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 심지어 쉼터를 운영하는 단체의 운영진들은 모두 생업을 겸하는 무보수 봉사자들이다. 시간 날 때마다 묵묵히 찾아와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여러 스텝과 봉사자분들을 직접 보니 시설관리 탓하며 그들을 원망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러한 환경이 몇몇 대형동물보호단체를 제외한 소규모 사설 보호소들과 비교했을 때 절대 열악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뒤에서 고생하는 여러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이 있지만 재입양이나 임시보호에 비해 버려지는 개체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관리에 필요한 비용과 노력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기견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다행히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 관련 법 및 정책이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 유기 동물이 늘고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호주에서 본 환경은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오면 나도 유기견 문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