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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리 Apr 01. 2022

이야기의 시작.

꽁기 꽁기한 꽁기 이야기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지금 두 마리의 유기견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 모두 나의 첫 번째 반려견 꽁기 때문일 것이다. 꽁기는 10여 년간 내 곁에 있다 떠난 나의 첫 번째 반려견이다. 내 곁에 있었다고 하지만 정말 무책임하게도 나보다 부모님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게 사실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대학생 때 무턱대고 애견숍에서 분양받은 꽁기는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마치 자기를 데려가야만 한다는 것처럼 작은 유리상자 안에서 쉴 새 없이 폴짝 뛰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런 건강하고 밝은 모습에 반해 덜컥 데리고 와 단칸방 원룸에서 함께하기 시작했다.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지식이 먼지만큼도 없었기에 산책은커녕 제대로 케어할 능력도 안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보다 한심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자 한참 뛰어다닐 나이의 어린 꽁기는 온 방안에 똥을 싸놓기 시작했다. 수업 때문에 집을 비우면 비싼 전공책을 뜯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휴지를 뜯어놓기를 반복했다. 지극히 당연한 어린 강아지들의 말썽을 이해 못 하고 힘들어할 때쯤 다행히도 꽁기를 이뻐해 주시던 엄마가 본인이 키워보겠다 제안하셨다. 그렇게 나는 못 이기는 척 꽁기를 부모님 댁으로 보냈다.

애기애기 시절 꽁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부모님께 보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 같다.  시기 아빠는 정년퇴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엄마는 갱년기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묘하게 맞아 들어간  시기 때문에 잠시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으면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불안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엄마는  시간에 남자(아빠)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상황이 익숙지 않은데 속에선 시도 때도 없이 불덩이가 올라왔다(엄마는 갱년기 증상을 항상 이렇게 표현하셨다.). 평생직장 생활을 하다가 집에서 백수생활을 하는 아빠는 처자식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 높아지는 에스트로겐 수치와 함께 짜증이 올라왔다. 이런 시기에 꽁기는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밥상을 차리고 꽁기한테 "아빠  먹으러 오라고 ." 하면 꽁기는 용케 알아듣고 쪼르르 아빠방으로 들어가 TV 보는 아빠를 바라보며  말이 있는  행동했다고 한다. 그럼 아빠는 "지금 간다고 ." 하며  하나를 두고  들리는 말을 굳이 꽁기를 통해서 했다고 한다. 웃을  없는 집에  녀석 하나 때문에 대화 거리가 생기고 웃기도 했다며 지금도 건강할 때의 꽁기를 회상하신다.    

잘생겼어!

첫정이 무섭다고, 꽁기의 1순위는 항상 나였다. 내가 없으면 다른 손님, 그리고 엄마, 다음은 아빠. 아빠는 항상 제일 마지막이다. 매일 간식을 챙겨주고 산책시켜주던 아빠보다 씻겨주고 밥 주고 끌어안고 자는 엄마를 더 좋아했고, 가끔 집에 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안 하는 나는 뭐가 좋다고 제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 데리고 와서 되지도 않는 교육을 시킨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훈육한 게 꽁기의 기억에 남아있어서일까? 늦바람이 들어 공부를 하겠다고 해외에 홀로 나갔을 때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자주 했다. 매일 묻는 안부 속에 꽁기의 모습을 더 잘 보고 싶어 카메라 화질이 좋은 휴대폰으로 바꿔드리기도 했다. 나이 들면서 하얗기만 하던 털 곳곳이 누렇게 변했지만 내 눈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예쁘기만 했다.


그러던 꽁기가 어느 날부터 코피를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주기가 점차 짧아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처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오후 내내 검사를 받는 동안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엄마와 대학교 주변을 산책하며 기다렸다.  밖에 내지 않았지만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엄마와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한참  나온 진단 결과는 '비강암'. 이미  증상이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와 너무 비슷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막상  귀로 듣게 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개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암일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에서도 두세 번밖에   사례라 딱히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특히 코피가 난다는 것은 이미 말기의 증상이기 때문에 대부분 6개월에서 1년밖에   없을  같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코피 나는  빼곤 이렇게 멀쩡한데? 설마' 하는 생각에 최대한 몸에 좋다는 음식도 찾고 약도 알아보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꽁기의 얼굴은 빠르게 변해갔다. 거대해진 종양 덩어리가 꽁기의 코와  사이를 덮기 시작했다. 숨을   없는 꽁기는 혀가 보라색이  때까지 숨을 참다 입으로 크게 내쉬기를 반복했다. 진단  거의 6개월이  무렵 이미 꽁기의 삶은 정상적인 강아지의 삶이 아니었다. 코로 호흡을 못하니 냄새를 맡을  없었고 자연스럽게 식욕이 떨어져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잠을 제대로   없어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모르는 산송장과 같은 생활을 했다. 힘겹게 잠들다가도 비명과 함께 심한 경기를 일으켜 부모님을 놀라게 했다.

커진 종양으로 힘들어 하는 꽁기

매일 같이 꽁기의 안부를 묻던 어느 날 엄마는 큰 결심을 하신 듯 안락사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꽁기는 10년 9개월이라는 짧은 견생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아니 떠나보냈다. 안락사 당일 예약한 병원에 확인 전화 후 참아왔던 슬픔에 목놓아 우시던 엄마의 뒷모습과 차갑게 식어버린 꽁기의 몸에서 느껴졌던 그 촉감은 아마 평생 슬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꽁기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엄마가 힘들 수 있으니 꽁기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말자고 하셨다.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본인도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어렵게 꺼낸 말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꽁기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마음껏 회상할  무지개다리를 건넌 꽁기도  고마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슬플  같이 울고 감정 숨기지 말고 마음껏 이야기하자고 말씀드렸다. 지금은 가족들 모두 우스갯소리로 꽁기 이야기를  정도로 행복한 추억만 남아있다. 우리 곁을 떠나고도 이렇게  행복을 안겨준 꽁기가 정말 보고 싶다.

이수진 작가님이 그려준 건강한 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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