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오 이야기
꽁기를 보낸 후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펫로스(pet loss) 증후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나가는 강아지만 보면 덜컥 덜컥 가슴이 저며왔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한밤중에 꿈에 나타나 펑펑 울며 친누나에게 전화한 적도 있었다.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앞으로 강아지가 보고 싶으면 자원봉사를 가서 실컷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살았고 덕분에 보호소의 온라인 카페를 심심치 않게 둘러보는 나름 열혈 회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오투.
오투는 오레오를 구조한 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임시 보호하던 집에서 개명하면서 오레오라 불리기 시작했다. 오레오가 된 이유는 그 생김을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검정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모색은 마치 우리가 아는 그 초콜릿 과자를 연상시켰다. 내겐 그 모습이 아기 젖소 같기도 해 보자마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레오는 한여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피부병과 곰팡이에 시달리던 상태로 구조된 한 살도 채 안 된 강아지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임시보호처가 빨리 나타나면서 좋은 임시보호 가족들과 함께 집 멍이가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가끔 올라오는 오레오의 소식을 보면 유독 애정이 가서인지 그때마다 댓글을 열심히 쓰곤 했다. 이후 오레오는 해외 입양이 확정되면서 캐나다로 가는 이동 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국내에 입양되면 물론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최근 국내 여러 유기견 보호 단체들은 구조한 유기견들을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해외로 입양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해외에서 가족을 찾게 된 아이들이 화물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여행객을 통해 동행하는 경우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단체 또는 개인 구조자들은 해당 도시로 가는 이동 봉사자를 수소문해서 함께 보내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객들이 줄면서 입양이 확정되었음에도 제때 떠나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입양이 취소되기도 했고 많은 비용을 들여 화물기를 이용하면서 보호단체에 부담도 가중되었다. 오레오도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이동 봉사자를 기다리며 임보 가족과 기한 없이 머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임시보호 가족의 개인 사정으로 오레오의 임시보호처를 급하게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남자 혼자 사는 복층 오피스텔에서 과연 10킬로 내외의 강아지를 잘 보살필 수 있을까? 잠시지만 내가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심적, 금전적 여유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임시보호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보호단체로부터 임시보호가 승인되었고 오레오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꽁기를 보내고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던 다짐은 이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아 잊혀졌다.
어떤 문장이든 '그 해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소설이 된다고 하는데 그 해 여름 오레오와 보낸 시간은 정말 내게 소설 같은 일상이었다. 처음 오레오는 내 손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짧은 견생에서 벌써 세 번째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전 임시 보호자님의 말대로 매우 소심하고 특히나 남자를 무서워한다고 하니 섣불리 뭔가를 시도하는 건 오히려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이 공간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렇게 5일쯤 지나자 이제 내가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제 터치를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레오 옆 바닥에서 생활을 한지 며칠. 손이 물릴 각오를 하고 모르는 척 살짝 손을 뻗어 조금씩 만졌는데 다행히도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틀 정도 시도하자 용기가 생겼다. 이번엔 하네스를 풀어줄 때가 되었다. 처음 올 때 하고 온 하네스를 일주일째 차고 있으니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조심스럽게 숨죽여 하네스를 벗겨줬는데 졸리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등골엔 식은땀이 났다. 10일 만에 하네스를 풀자 홀가분해진 오레오는 제법 내가 익숙한지 터치도 어느 정도 받아주었다.
다음은 모든 반려견들의 최애 활동인 산책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네스를 벗기기 힘들었던 만큼 다시 입히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네스를 보면 피하고 움찔하기에 오레오가 쉬는 자리에 가지고 놀도록 며칠을 곁에 뒀다. 결국 집에 온 지 정확히 2주 만에 어렵게 다시 하네스를 채우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첫 산책은 무리하지 않고 복도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발목 높이의 안전문을 나가지 못하고 있어 결국 안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복도에서 한참을 냄새 맡고 걷더니 시원하게 배변을 했다. 오레오의 첫 실외 배변.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개 똥 싸는 모습에 이렇게 뭉클할지 누가 알았을까. 아마 반려견을 키우는 가족만 알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다음날 첫 야외 산책을 성공하면서 오레오와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오레오와 친해지는 과정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난 성격이 급하지 않다. 답답할 정도로 차분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이런 점에서 오레오가 덜 위협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운 좋게 그때는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였다. 안 그래도 밖에 잘 안 나가는 집돌이인데 회사마저 가지 않으니 오레오와 하루 종일 눈 마주칠 수 있었다. 다음은 좁은 공간이다. 나중에 이사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엔 복층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위층 공간은 오레오가 못 올라가는 침실이었고 아래층 거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몸을 숨길 공간도 없었기 때문에 주방과 화장실을 오가며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가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바로 오레오의 노력이 아닐까. 자신보다 큰 낯선 사람이 혼자 사는 좁은 공간에 내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그 사람이 계속 눈앞에 왔다 갔다 하고 나한테 조금씩 다가온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공포감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두려움을 꾹 참고 벽을 넘어 준 오레오가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산책을 시작한 오레오는 실내에서 배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산책을 나가야 했다. 나가면 꼭 쉬와 응가를 한 번씩 했다. 문제는 그 해 여름에 역대급으로 긴 장마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비가 와도 반드시 나가야 하는 산책은 여간 곤혹이 아니었는데 실외 배변만 하는 견주들은 그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산책 후 항상 발을 씻기고 몸을 잘 말려줬는데 혹시 피부에 습진이 생기진 않을까 매일 발바닥을 체크하고 이곳저곳 털을 골라주곤 했다. 오레오는 사람보다 개를 훨씬 더 좋아했다. 특히 본인보다 큰 강아지와 뒹굴면서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에너지 넘치는 보더 콜리나 어린 진도 아이들을 만나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뒹굴었다. 그래서 마음껏 뛰어놀며 다른 개들과 놀 수 있는 안전한 운동장에 자주 갔는데 작은 강아지들에겐 오히려 민폐가 될 수 있어 대형견 운동장에 왜인지 내가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서 놀게 하곤 했다. 큰 개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잘 노는 오레오를 보며 뿌듯하면서도 혹시나 사고가 생길까 불안한 마음에 항상 옆에서 지켜봤다. 대부분의 대형견 견주들은 자신의 개가 너무 신나 한다며 더 좋아해 주시거나 작은 아이가 정말 활기가 넘친다고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오레오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은 해외 출국일이 결정되면서 점차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오레오가 처음 왔을 때는 캐나다의 한 가정에 입양이 결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초반에 친해지는 과정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린 영상을 보고 그 가족은 오레오의 입질을 우려했고 이를 이유로 입양을 취소했다. 어떤 개든 환경이 변하면 두려움 때문에 방어적인 입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때문에 입양을 포기한 건 어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캐나다까지 가서 파양 당하는 것보다 나와 함께 지내며 더 확실한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 낫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 안가 시애틀의 한 가정에 입양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후 해외 이동 봉사자를 구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아 시간이 흐르던 차에 시애틀의 가족이 카고(Cargo)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면서 갑자기 출국일이 잡히게 되었다. 시애틀의 가족은 이미 한국에서 입양한 올리라는 미니 백구를 키우고 있었다. 올리와 함께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할 또 다른 가족을 찾던 중 오레오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레오와 비슷한 크기에 영리하게 생긴 올리 사진을 보니 개를 좋아하는 오레오가 충분히 행복할 만한 최고의 환경이 갖춰진 가족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입양가족 선택에 내 의사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레오의 출국을 준비하면서 감정이 수시로 요동치지 시작했다. 평생 가족을 만나게 될 오레오의 견생을 생각하면 행복하면서도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며 다시 버려졌다고 여기지 않을까 생각하니 슬픔이 몰려왔다. 특히 출국 며칠 전 오레오가 타고 갈 켄넬을 조립하면서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꽁기를 보낸 후 다시는 내 손으로 강아지를 보내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물론 다른 의미의 이별이지만 역시나 이별은 쉬운 게 아니었다. 출국 날 아침. 분주히 움직여 공항 근처에서 검역을 마치고 마지막 산책을 했다. 그리고 화물 터미널에 오레오를 무사히 인계했다. 함께 간 여자 친구(지금은 아내가 된)가 너무 울어서 나라도 정신줄을 잡고자 참았던 눈물이 오레오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집에서 왈칵 쏟아졌다. 오레오가 가지고 놀던 몇 안 되는 장난감, 곳곳에 남아있는 털, 매일 산책하면서 사용하던 하네스와 리드 줄, 그리고 핸드폰에 담긴 사진들은 그리움, 슬픔, 행복, 고마움 할 것 없이 온갖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새벽부터 오레오가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의 루트를 추적하면서 잘 가고 있나 지켜보며 나를 유학 보낼 때 부모님 마음이 이랬을까 싶었다. 다음날 가족과 만난 오레오의 사진과 영상을 전달받았다. 놀랍게도 처음 보는 올리와 거실에서 뛰어노는 영상을 보며 오만 복잡한 감정이 모두 사그라들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오레오의 가족들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신다. 그렇게 나의 첫 임시보호 반려견이자, 내가 본 반려견 중 가장 완벽했던 오레오는 지금 시애틀 인근 포틀랜드에서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