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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Jul 06. 2020

사소한 감정들이 중요한 이유

사소하고 다양한 감정들은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가끔 내담자들은 저에게 찾아와 "사소한 일때문에 너무 감정이 잘 상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원래 인간은 사소한 일에 감정이 상해요. 대범한 일은 감정이 상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게 되지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사소한 감정들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감정들입니다. 나의 감정을 되돌아 보는 방법입니다.


사소함과 대범함의 경계에서  

  

얼마 전에 만난 A양(30)은 “남들이 별말 안했는데도 혼자 눈치보며 감정이 오락가락 심해요. 조금만 실수해도 엄청 불안하고 겁이나요. 사소한 것에 예민하다고 할까봐 할말도 제대로 못하게 돼요”라며 정신과를 가야하나 싶은 마음에 상담에 왔다. 어릴 때부터 A양의 아빠는 술과 도박에 빠져살았다고 한다. 부부싸움과 가출을 반복하던 A양의 엄마는 중3학년 때 결국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두고 나갔다고 한다. 아빠 밑에 남겨진 A양은 자기앞가림뿐 아니라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동생들의 엄마인양 밥하며 청소하고, 새로 들어온 새엄마에겐 아빠에 대한 하소연도 들어주면서 대범하고 똑부러진 맏이로 살아왔다. 결국 새엄마도 이혼을 하고 A양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인서울의 대학은 아니어도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개발해가며 회사에서 인정받고 사회초년생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월급도 정말 많이 올랐다고 한다.       

30세가 될 때까지 남들은 A양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대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A양 스스로도 얼마 전까진 자신이 그런 사람인줄 알고 살아왔다고 한다. 얼마 전이란 이직한 회사에서 승진을 하면서 부터다. 그동안 팽팽하게 버텨왔던 고무줄이 툭하고 끊어진 것 같다고 하였다.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패닉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한없이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고 어떤 판단도 안서고, 불안하고 아주 소심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 


신체의 성장은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자라고 근육의 발달은 대근육에서 소근육으로 섬세하게 발달해 간다. 우리 주변에는 몸은 어른인데 마음이 어린애처럼 미성숙한 경우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마음이란 몸처럼 밥만 준다고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마음이란 객관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하여 실체를 명확히 하긴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이성보다는 감정에 가깝다고 말한다. 감정의 발달의 시작점은 ‘쾌(좋다)와 불쾌(나쁘다)’로부터 시작하여 분화한다. 예를 들어 ‘좋다’는 감정은 “행복함과 사랑스러움”으로 나뉘어지고, 이중에 행복함이 “은혜와 기쁨”과 같은 감정으로 나뉘어 분화된다. 이처럼 하나의 감정은 분화에 분화를 거듭해가면서 섬세한 감정의 마음근육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불쾌(나쁘다)의 부정적인 감정의 분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감정의 분화는 마음의 근육인데 이들은 저절로 알아서 분화발달하지 않는다. 감정의 분화는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줄 때 다음 단계의 감정으로 넘어간다. 어린 시절에는 주 양육자가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해줘서 성숙해지는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내가 알아주면서 더욱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고 싫음의 두개의 감정만 있었으나 성숙해질수록 여러 개의 세분화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즉 심리학에서 양가감정이 수용되는 건강한 심리상태라 할 수 있다.     


어디선가 본 문구인데 ‘차창 너머로 눈물 짓던 그는 어디가고 나에게 괜찮다는 그 말에 안심하기도 야속하기도 했습니다.‘처럼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마음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말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감정의 분화가 덜된 순수한 어린이의 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좋은 말은 아닌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심리적으로도 성숙해지고 마음은 다차원적으로 복잡다단해져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생겨도 부정적 감정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심사숙고할 수 있는 건강한 멘탈이 되는 것이다.      



사사로움이 사라진 자리엔 마음의 근육이 자라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 우울해져서 남들에게 말하기 힘들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작은 일에 늘 걱정이 앞서요“라고 상담에 와서 물어보면 상담자인 나는 ”원래 인간은 사소한 것에 감정이 상해요. 대범한 일은 감정이 상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게 된답니다“라고 말한다.     

사소하게 느끼는 감정은 내가 나임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사소한 감정이 스스로도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남들이 볼 때 너무 주관적인 것 같아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 같아서 ”라고 한다. 사회는 개인에게 객관적이고 규범적이고 이타적이길 원한다. 또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적 규범이 개인보다 우선되길 기대하며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하길 거부한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회에서 원하는 역할을 중시하고 개인의 감정을 외면하는 태도는 결국 유리멘탈에 이르게 된다.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감정들은 바로 나의 고유함이 있는 보고(寶庫)인 곳이다. 일상에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진짜 나의 것이다. 즉 내안에서 경험되는 사소한 감정을 허락하는 것이 나다운 마음의 근육을 분화시켜가는 것이고 살아있는 나의 촉이며 나의 감각인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견디는 힘이 멘탈입니다

 

사람들은 밝은 면만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이 긍정적일 때는 긍정으로 보고, 부정적일 때는 부정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현상이 긍정과 부정이 반반씩 있다면 긍정과 부정을 반반씩 보는 것이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긍정만 보려는 것은 긍정왜곡하는 태도이다. ‘쾌(좋다)와 불쾌(나쁘다)’의 감정 중에 좋은 감정만 선택해서 사는 것은 사실은 반쪽짜리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기형적인 것이다. 즉 마음이 온전히 발달할 리가 없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으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들 눈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찾아보면 다 구린 구석이 있고 찌질한 구석이 있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내안의 부실함을 거부하지 않고 바라보는 내적인 힘이 좋아지면 외적인 부정적인 말들을 견디는 힘이 좋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근육이 좋아지는 것이며 좌절에 견디는 힘이 좋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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