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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Apr 29. 2020

마릴라 아주머니가 건넨 위로

빨간머리 앤, 그리고 마릴라 아주머니

어릴적 추억을 소환하게 되는 몇 권의 책이 있다. 

나에게 베스트는 '소공녀'. 그리고 다섯손가락 어디쯤에 앤이 자리잡고 있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일요일 아침 아마 9시쯤이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을 깨우던 노래. 그리고 곧이어 주근깨에 호기심많은 앤이 등장했다. 만화였지만 그 풍경을 보며 가슴이 설레었다. 

2019년 12월과 2020년 1월 사이, 그 풍경을 새롭게 만나게 됐다. 넷플리스의 '앤'을 통해서.


넷플리스 드라마 '앤'을 보며 경악에 가깝도록 놀랐다. 

불과 몇년 전에도 책으로 앤을 새롭게 읽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내 마음은 앤보다 마릴라 아주머니쪽에 가까워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앤은 내게 조금은 불편한 존재로 다가왔다. 

'너 너무 수다스럽다. 조금 더 말수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기를 아무 조건 없이 거두어준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에게 왜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걸까. 고맙다는 말은 왜 이제 하지 않는거지. 눈치껏 좀 살자. 저렇게 장난을 칠 때냐. 아무거나 좀 만지지 마, 아주머니가 싫어하잖아. 그러다가 다시 쫒겨나면 어떡할래?'

어느새 난 마음 속으로 저런 잔소리를 읊어대고 있었다. 앤의 끝없는 수다를 들어야 하는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가 힘들어보이기까지 했다. 속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왜 저렇게 철이 없는거야."


말을 뱉어놓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나는 앤이 아니라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심하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이다. 

나이 때문일까 생각하다가 곧 경험의 차이라고 고쳐 생각했다.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고, 육아기의 한 중간에 있기 때문에 마릴라 아주머니의 입장이 명하게 다가오는게 아닐까.   

마릴라 아주머니는 수다스런 앤의 철없음을 묵묵히 지켜봐주되, 분명한 원칙으로 대하고 있었다. 앤을 그리 다그치지 않는다. 파양에 대한 생각도 없다. 다만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과 함께 인생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 

즉 자신이 흘려보낸 유년기를 다시 살아내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하곤 했다. 내가 한번 겪었던 유년기를,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다시 회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시 색종이를 접고, 다시 느린 걸음으로 걸어보고, 다시 100원짜리 작은 놀이기구를 타면서 그 시절 나의 감정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빨간머리 앤은 앤의 성장기이자,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이것은 책과 달리 드라마가 갖고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세심하게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의 성장 과정과 가정 환경,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오빠(형)의 죽음과 그로 인해 마음을 닫아버린 남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어른이 되어 한번도 그 이야기를 하지않던 마릴라와 매슈는 앤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유년을 돌아보고, 위로한다. '너는 충분히 힘들었고, 너는 충분히 아팠어.'

남 앞에 절대 나서지 못하던 매슈는 마을 회의에서 손을 들고 발언을 하기도 한다. 매슈는 자신의 유년을 치유하고 다독인 끝에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성장은 나이와도 무관하며 그 때와도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앤과 함께 성장하는 마릴라와 매슈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자라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더 자라났을까. 

내 속에 있는 어린 아이를 위로해주었으면 좋았을걸. 충분히 그렇게 하진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나버렸는데 말이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상처가 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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