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미국의 정치인 패트릭 헨리의 명연설에 나온 말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촉발한 연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런 멋들어진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함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소소한 일상의 자유를 빼앗긴 한 불운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를 빼앗긴 채 소확행마저 놓아야 했던 엄마. 바로 필자이다.
사실 나는 드라마 덕후였다. 국내 드라마는 물론 미드, 중드, 대드, 일드 가리지 않고 시즌별로 하나는 꼭 본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심지어 나에겐 문화연구라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외적으로는 연구를 위해 실상은 개인적인 취향의 만족을 위해 시즌별 드라마 정주행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 집 그녀의 덕질이 시작된 이래 이러한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틀어졌다. 바로 그녀가 사랑하는 아이돌의 음방+예능 때문이다.
입시지옥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답게 그녀의 하루 역시 학교에서 시작해서 학원으로 끝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와 나 모두 학원에 전기세를 내러 다닌다는 데 큰 불만은 없다는 정도...^^그저 다니는 것으로 그냥 불안증을 해소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
아무튼 그녀의 덕질을 응원하는것으로 그나마 좋은(?) 엄마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나는, 이러한 그녀를 위해 VOD 시청을 적극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덕질은 생각보다 많은 불편을 야기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그녀가 TV 시청을 원하는 바로 그 시간(학원 하원 후)에 했기 때문이다.
까짓것 거기까지는 양보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멋진 엄마'니까. ㅎㅎ
그런데 이 따님은 지극히 바른(?) 청소년이라 좋고 아름다운 것을 가족과 나누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 그 결과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아이돌에 대한 사랑과 정보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 단군의 홍익인간에 이어 이번에는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동서양 사상을 넘나들며 배우고 익혀 실천하니, 참으로 훌륭한 학생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그녀의 1차 전도 대상은 바로 나... 이 불운한 엄마였다. 저녁 겸 야식을 먹으면 그녀의 호출이 시작되었다. 일도 공부도, 그 어떤 핑계도 소용없다. 방에서 몰래 드라마 좀 보려면 귀신같이 알아채서 끌고 나갔다.
그 결과 각종 음방은 물론 그녀의 '언니 오빠'들이 출연한 예능, 최근 문제가 되었던 그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는 놀라운 강제 시청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더 슬픈 것은 더 이상 그녀가 나를 찾지 않음에도 이미 중독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스스로 찾아보는 나를 발견하며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바야흐로 자발적 신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ㅠㅠ
사실 교육자로서 아이의 덕질에 이렇게 동참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약간의 죄책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칫아이돌 산업의 분별없는 소비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되었다. 그러나그것도 잠시뿐! 그때마다 스스로 우긴다. 이 모든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그리하여 그녀의 비판적이고 합리적 덕질을 위해 오늘도 엄마는 고군분투한다. 즐겁게 음방과 예능을 '선행' 학습하면서 말이다.